'토이카메라, 작년 쯤 부터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그 유행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 같으세요?'
라는 질문을 들었는데 것 참, 그냥 흘려들을 질문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하긴, 다들 궁금해 할 법도 합니다. 최신 DSLR에 토이카메라 효과 같은 메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시대가 왔으니 말이죠.
세상에나. 언제나 선예도가 어떻고 화질이 어떠하고 화소는 또 얼마나 높은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광고하는 디지털 카메라들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토이카메라'효과를 집어 넣었다는 군요. 실제로 그 카메라를 써보지 않았지만 기사를 보면 주변부를 어둡게 만드는 비네팅 효과를 주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건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들이 지향하던 것과는 정 반대방향에 있는 기능이 아니던가요? 비네팅은 싸구려와 저질을 지칭하는 또다른 단어 아니던가요?
어떤 기업이든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트렌드를 유심히 살펴본 뒤에 상품을 내놓기 마련입니다. 카메라 회사라고 별다를 건 없겠지요. 즉 디지털 카메라에 '토이카메라' 효과를 떡하니 집어 넣었다는 건 많은 유저들이 그 기능을 원하고 있거나 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겠지요. 이쯤 되면 우리는 토이카메라가 '유행'이구나, 라고 쉽게 유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토이카메라'는 그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질, 한번 '빵'하고 터지고 말 단순한 유행일까요?
:: 토이카메라는 LOMO LC-A의 아류?
토이카메라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홀가
토이카메라는 과연 작년 즈음해서 갑자기 폭발한, 그저 스치고 지나갈 유행일 뿐일까요? 글쎄, 저는 그렇게 쉽게 단정짓기 힘들다고 봐요. 그저 지금의 상황들만 놓고 보면 정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듯 보일 수도 있고, 토이카메라들이 Lomo LC-A의 저렴한 대안인 것 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렇게 간단히 결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수 있어요. 국내의 토이카메라 1세대로 칭할 수 있는 유저들은 국내에 Lomo LC-A가 막 상륙하던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Lomo LC-A 뿐 아니라 홀가, 다이아나(복각이전 오리지널 모델), 러시안 토이카메라 등을 두루 섭렵하며 점점 매니아층을 늘여나갑니다. 90년대 중후반의 일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Lomo LC-A는 로모그래피의 홍보 공세로 급격히 시장을 넓혀나갔고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지금,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많은 토이카메라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LOMO LC-A의 대중적 인기는 홍보에 힘입은 바가 크다
::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베를린장병이 무너질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 처럼, 우리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계에 살고 있다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골치아픈 문예사조사를 들먹거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이야기 해보자구요. 냉전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정말이지 어떻게 정의내려야 될지 모를 정도로 급격히 변화해갑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를 명확히 할 수도 없는 국가간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어느날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하루 아침에 누군가는 로또로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급락한 주식에 목을 메고 마는, 정말 당장 1분 1초도 쉽게 내다볼 수 없는 세계속에 살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했을까요. 정확하게 프레이밍을 하고, 노출을 정확히 재고, 딱딱 칼같이 맞아 떨어지는 사진을 찍고 싶었을까요? 이토록 불확실한 것들로만 가득찬 세계에서?
1960년대에 만들어진 DIANA 오리지널 모델
젊은이들은 오래전에 만들어졌던 DIANA라는 어설픈 중형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와 비슷한 형태의 홀가와 같은 카메라뿐 아니라 구소련에서 생산된 콤팩트 카메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카메라들이 지니는 특성은 최신 카메라들에 비해 당최 결과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카메라들이 만들어주는 이미지는 명징한 것 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게 기존의 이미지와 차별성을 지니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의 몇몇 젊은이들은 그것이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 될것으로 판단, Lomography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Lomo LC-A라는 구소련에서 생산되었던 콤팩트 카메라를 판매하게 됩니다.(첨언하자면 Lomography와 LOMO는 별개의 회사입니다.)
2009년 현재 토이카메라의 인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 조금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나요? 예, 그렇습니다. 토이카메라의 인기는 Lomo LC-A의 유명세에 편승해 급작스레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거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시대의 커다란 문화속에서 조금씩 뿌리를 뻗어왔고 이제야 조금씩 잎을 틔우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Lomo LC-A건, 토이카메라건 대중에게 이만큼 알려지고 수많은 유저를 양산하고 있다는 건 그 카메라들이 지금 이 시대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죠.
:: 당신의 일상담기, 비록 내일을 모를지라도
토이카메라는 바로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데 훌륭한 도구가 아닐까 싶어요. 기계적 특성상 조금의 제약이 있다지만 셔터를 누르기 위해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도 없고 어디든 부담없이 들고 나갈 수 있고 금전적인 부담감도 덜한 편이고. 일상을 담아내기에 토이카메라만큼 편하게 집어들 수 있는 카메라는 드문 것 같네요.
예, 비록 내일 당장 세계의 종말이 오건 로또 대박을 맞건간에 저는 소소한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내렵니다. 그리고 가방한켠에는 항상 토이카메라 한대가 들어 있겠지요. 여러분도 가방에 토이카메라 한대 대충 구겨 넣고 다니면서 순간순간의 일상을 담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2009.4.17
Eas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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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에는 저도 단순히 그저 반짝이는 유행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바뀌었네요. ^^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
이번에도 도움이 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토이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해서 유독 토이카메라에 대한 애착이 강하네요.
시간이 날 때마다 토이카메라에 대한 포스팅을 종종 할께요~
토이카메라는 필수-
그렇지요.
절대로 빠질 수가 없죠. :)
오 토이카메라 잘보고 갑니다.
아이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변에서 그러지요.
그런 카메라로 뭘 찍냐고...
하지만 나온 결과물을 보면 다들 그걸로 찍은거 맞냐고 물어봅니다.
초점도 안맞고 흐릿하지만 뭔가 느껴지는게 틀리다고 하면서요.
전 개인적으로 사진은 화질이나 화소도 중요하지만 그 사진에서 본인이 느끼는 감성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이카메라를 아주 좋아합니다.
유행은 지나도 매니아는 남는 것~! 토이카메라여 영원하라~!~!
제 말이 그겁니다.
사실 화소 화질의 경쟁이 취미사진가에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아마도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저로선, 토이카메라가 그 소비 대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아...너무 직업적 어투다 ㅋㅋ)
아날로그적 감성은 인류가 메트릭스에 갇혀 지내지 않는한(하하하)
영원하리라 믿습니다.
설사 매트릭스에 갇혀 지내도 꿈은 꾸겠지요.:)
토이카메라 써보고 싶었는데 이 글 보니 생각이 굳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니 한대 구해보세요.
새로운 즐거움을 얻으실 거예요~ :)
갑자기 토이카메라 전도활동을?????...
재미난 리뷰들 읽고가요. ^^
하하. 갑자기라기보단 뭐 예전부터 꾸준히 토이카메라를 사용해왔거든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정성이 줄줄 흐르는 글입니다.
욕심만 많아서 테크닉도 없이 컬렉팅에 눈멀면 ....ㅠㅠ
한번씩 이런 글 쓰고 나면 힘이 쪽 빠져요. 하하;;;
사실 카메라를 모으고 싶어하는 욕구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잖아요.
뭐 적당히 즐긴다면 문제 될 게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마지막 문장 정말 맘에 들어요. 구겨넣기 & 일상담기..
정말 토이카메라는 맘편하게 아무데나 쉽게 구겨 넣을 수 있잖아요.
크크크.
필름카메라의 또 다른 매력을 알게 해준 플라스틱 토이카메라들과 LC-A가 등장했다는 것 만으로도 대한 민국의 사진을 즐기는 딱딱한 방법들에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봅니다. 이젠 디카보다 필카가 더 쿨해 보일 정도니까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취미사진가들이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열을 올릴 때
토이카메라들이 꽤나 쿨한 한방을 먹여줬다고 생각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신지요?
토이카메라 하나 사고 싶네요..
저는 제 아리아를 구겨넣고 다니지만요ㅋㅋ
아리아 정도의 크기라면 구겨넣고 다닐만 하죠. 흐흐흐
아리아 정말 부러워요. ㅠ_ㅠ
역시.. 작가님 다운 글입니담~ ^^
작가;;
부끄러워요. ㅠ_ㅠ
작가님이셨나요? ^^ 와우..
정말 공감에 공감을 거듭하며 읽었습니다.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고..
..그래서
저는 올림푸스 펜 씨리즈를 애용한답니다.. : )
아;;; 딱히 작가라 불릴 그런 처지는 아니구요. ㅠ_ㅠ
올림푸스 팬씨리즈 좋죠. 간단하고. 사진도 잘나오고. :)
글을 역시 이렇게 쓰는게지요..후훗~짱입니다.
Eximus는 가벼운 무게와 광각의 힘이 장점이 대단한 녀석입니다~:)
Eximus로 찍었던 목련사진 너무 마음에 들어욧~ㅎㅎ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응. 필름이 존재하는 한 계속 유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죄송하지만 고등학생이 쓰기 편한 토이 카메라 추천받을수있을가요..
저렴한거면 더 좋은데..eximus도 좋은거 같던데
east rain님 의견이 궁금해서요:)
로모도 사고싶지만 알아보니 비싼거같고..
알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엑시무스가 적절할 것 같아요.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찍기도 쉽고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