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EastRain의 포토 다이어리는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나눠서 포스팅했는데..
뭔가 맥이 끊기는 것 같아 다시 하나로 합쳤습니다. 쿨럭.
이번 다이어리 주제는 특별할 것도 별로 없으니,
벌떼와 같은 트랙백 기대하고 있겠습니닷!
취미로 사진을 찍으시는 많은 분들이 소위 말하는 아웃포커싱(이 단어는 잘못된 영어 표기의 대표적인 예죠. 본문의 다음 부터는 뒷흐림 등의 말로 표현됩니다.)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라고 예외는 아닌데, 2004년에 찍었던 왼쪽의 사진이 저를 사진이라는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 들였지요. 무겁고 폼도 나지 않는 Fed 5C라는 러시아 카메라로 찍었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것 같아요. 10월의 날씨도 참 좋았고 말이죠. 그 카메라에 달려있던 싸고 성능 좋은 Industar 렌즈도 한 몫했었고요.
저 사진을 받아들고 ‘아, 멋지게 뒤가 흐려지는 사진이야말로 취미사진의 로망이구나!’라고 생각했으니 뭐 말 다했지요.
뒤가 멋진게 흐려진 사진을 찍고는 마구 두근거렸던 그 느낌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그런 사진을 직접 찍지 않더라도 누군가 자신의 인물사진의 배경을 멋지게 날려서 찍어줬을 때의 그 놀라움을, 기억하십니까?
이제 그 아련한 뒷흐림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깊은 정도가 되겠네요. 길이로 치자면 깊다는 표현은 길다는 것으로, 얕다는 표현은 짧다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초점이 맞는 길이, 즉 범위가 얼마나 되느냐를 말하는 것인데요. 심도가 얕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은 구간이 짧아서 그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심도가 깊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은 범위가 길어 전체적으로 사진이 쨍하게 나온 경우를 말하지요.
심도를 표현하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는 크게 세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우선 사진이 찍히는 필름 혹은 센서의 촬상면적입니다. 면적이 넓으면 넓을 수록 심도표현의 폭이 넓습니다. 두번째는 렌즈입니다. 렌즈의 밝기가 밝고 표준이상의 망원계열 렌즈일수록 더욱 얕은 심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초점이 맞은 피사체와의 거리입니다. 같은 화각의 같은 밝기의 렌즈로 같은 피사체를 찍더라도 얼마나 가까이에서 찍는가에 따라 심도가 다르게 표현됩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우측과 하단의 사진은 모두 120 필름을 사용하는 중형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필름면적이 넓은데다가 꽤나 가까이에서 촬영했죠. 그덕에 초점이 맞은 범위가 상당히 좁아졌고 렌즈의 조리개 값을 5.6 정도로 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얕은 심도의 결과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촬상면적이 좁다해도 아주 근거리에서만 찍는다면 뒤가 흐려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휴대폰 카메라,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에 아무리 CCD의 크기가 작다해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을 찍게 되면 얕은 심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듯이 말이죠.
촬상면적과 관련해 좀 더 확실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앞서 촬상면적이 넓을 수록 심도가 더 얕게 표현이 된다고 했는데 말이죠, 좌측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을 한번 보겠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춘 사진입니다. 차이점이라 한다면 사용한 카메라의 포맷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좌측의 정방형 사진은 120 중형필름으로 촬영했고 아래의 사진은 35mm 일반 필름으로 촬영했습니다. 35mm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좌로 더 많은 부분이 나와 비교하기에 조금 애매해 같은 비율로 잘라봤습니다.
35mm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 값이 2.0 정도로 꽤 밝게 개방이 된 상태였고 120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카메라의 조리개 값이 5.6 이상으로 조여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점이 맞은 주황색 장난감의 전후 뒷흐림을 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0 필름의 경우에는 전면에 놓인 빨간색 장난감의 형체가 아주 뿌옇게 표현된 반면에 35mm 필름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그보다 선명하게 표현이 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아주 원거리에 있는 건물의 흐려진 상태만 봐도 두 사진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진의 심도에 대한 광학적인 설명은 아주 길고 아주 복잡합니다. 저도 똑 부러지게 수식을 보여주며 심도에 대해 설명해드리기 힘들정도입니다. 그저 대략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밝은 렌즈, 망원 렌즈,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 넓은 촬상면적의 경우에 더 얕은 심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누구나 멋진 인물사진을 찍고 싶어해요. 누구나 자신이 아끼고 사랑해마지 않는 주변사람들을 파인더에 담아 한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예, 바로 그때가 심도가 얕은 인물사진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죠.
왼쪽의 사진은 3월쯤에 찍은 사진입니다. 3월인데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날로 기억해요. 코가 듬직하게 생긴 저 녀석은 담배를 한대 입에 물고 한껏 폼을 잡았지요. 같이 일하던 동생인데 가끔 저렇게 분위기를 잡아서 멋진 모델이 되어주곤 했습니다.
사진을 찍었던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일단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F3.5)했고, 빛이 모자란 상황이라( ISO 160 필름사용)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덕에 배경은 꽤 많이 흐려졌고 날리던 눈발은 붓질을 한 것처럼 궤적으로 그려졌네요. 참고로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라 135필름을 쓰는 일반 소형카메라에 비해 심도가 더 얕게 표현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인물에 노출을 맞추느라 배경의 색이 많이 날아갔지요. 그덕에 중앙에 위치한 인물이 더욱 부각되었네요. 마치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남자인양 멋지게 폼을 잡은 게 무색하지 않게 사진이 나와준 겁니다. 그래요, 적어도 사진속의 저 친구는 이순간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거죠.
이맛에 얕은 심도로 인물사진을 찍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단의 두 사진은 모두 꽤 밝은 렌즈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F1.2 근방으로 조리개를 맞추고 촬영을 했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렌즈를 개방하면 할 수록 피사체가 소프트하게 표현됩니다.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이 흐릿하게 표현되는 건 당연하고 초점이 맞은 부분 조차도 조리개를 조인 사진보다 훨씬 소프트하게 표현이 되죠. 혹자는 렌즈의 성능을 살려 촬영하기 위해서는 한 단이라도 조리개를 조이라고 말하지만 말이죠. 취향의 차이긴 합니다만, 일물사진을 찍을 때(특히 여성?)는 소프트하게 표현되는 것도 나름 예쁨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에 저는 무조건 최대개방입니다.(과연?)
사실 구도의 정석은 정중앙에 피사체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모든 상황에서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심도를 얕게 표현한 사진은 중앙에 피사체를 두었을 때 오히려 사진이 사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우측상단의 백사실계곡에서 촬영한 저 사진도 그런 예중에 하나죠. 비록 피사체가 화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정중앙에 배치되었지만 얕은 심도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인물이 더욱 부각되고 있거든요.
물론 무턱대고 심도를 얕게만 한다고 좋은 인물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만, 얕은 심도에서 자신의 내공을 상회하는 그럴싸한 사진이 나와줄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반스탑 혹은 한스탑의 밝기를 더 취하기 위해 두배 가량의 돈을 투자해 렌즈를 기변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형편이 된다면 그다지 말릴 일은 아닙니다만 무리해서까지 밝은 렌즈를 구비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거든요. 가장 저렴하게 한스탑의 셔터스피드를 확보하는 방법은 필름 감도를 높이는 것이고 돈들이지 않고 조금 더 얕은 심도를 확보하는 방법은 한발짝 더 피사체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원래 빛망울 이야기는 따로 할 생었는데 딱히 예제 사진으로 쓸만한 사진이 많지가 않아서 이번 기회에 같이 이야기할까해요.
제가 디지털 카메라는 그다지 잘 모릅니다만, 똑딱이 디지털카메라의 대부분이 접사를 제외하고는 뒷흐림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요.(최근에 시그마에서 출시된 DP-1, DP-2는 예외로 해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찌나 뒷흐림을 갈망하였는지 일부 똑딱이 카메라는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특정부분을 흐릿하게 만들어주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포토샵의 블러효과와 다를 게 없지요. 뜬금없이 블러타령이냐 하시면 바로 빛망울때문이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상단의 사진을 한번 볼까요. 배경을 자세히 보시면 별모양의 빛망울이 맺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빛망울의 맺힘이 단순히 배경을 흐리게 만들어주는 블러 효과와의 차이점이죠. 렌즈 조리개의 모양이 빛망울의 맺힘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데, 상단의 저 사진을 찍은 렌즈는 특정구간에서만 별모양으로 조리개가 조여집니다. 참고삼아 올린 부분 확대 사진을 보면 별모양의 빛망울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우측과 하단의 사진은 조리개가 원형으로 조여지는 렌즈로 촬영을 했어요. 그덕에 동그랗고 몽글몽글한 빛망울이 맺혔지요. 이처럼 사진의 뒷흐림에 빛망울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우선 예제 사진을 보셔서 알겠지만 나뭇잎이 우거진 곳을 배경으로 하고 근거리에 있는 사물을 촬영하면 빛망울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에 전구등의 반짝이는 사물이 있을 때에도 빛망울이 맺히구요. 다만 초점을 맞춘 피사체가 너무 멀리 있을 경우에는 뒷흐림이 나타나지도, 빛망울이 맺히지도 않습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심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번에는 조금 독특한 빛망울들을 보시겠습니다. 음, 사실 이 사진을 찍은 렌즈로 리뷰를 하나 작성해야 하는데 워낙 찍어놓은 사진이 없다보니 이런 기획 포스팅의 작은 공간만 차지하게 되었네요.
이 사진들은 LensBaby라는 특이한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주밍(zooming)+시프트(shift) 효과가 동시에 가능한 독특한 렌즈죠. 만듦새는 상당히 변태스럽고(?) 조금 조잡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처럼 개성적인 뒷흐림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저처럼 신기한 물건 보면 못참는 사람들에게 must have 아이템이 되곤 합니다.
예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LensBaby는 빛망울과 뒷흐림을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합니다. 초점을 맞춘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사진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전체적인 공간감을 일그러뜨리기도 합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3장의 사진은 과장된 빛망울 표현하고 있지요. 다른 꼭지에서 보여드릴 LensBaby의 사진을 보시면 사람들이 사진의 다양한 심도표현에 빠져드는 이유를 짐작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흔들린 사진,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 열거한 세가지는 사진을 찍을 때 기본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들 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니랍니다. 마치 로버트카파의 흔들린 사진이 현장감을 더해주기도 하는 것 처럼 말이죠.
초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반드시 특정 피사체에 정확하게 초점이 맞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빛망울이나 뒷흐림 그자체로 아름다운 경우에는 고의적으로 초점이 나간 사진을 찍는다해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자주 찍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가끔 이런 사진을 찍을 때가 있지요. 사실 제가 자주 쓰는 기종이 RF카메라인지라 파인더를 통해 심도를 미리 가늠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춰야죠. 하지만 SLR카메라의 경우에는 파인더를 통해 찍는 사진의 심도가 어떻게 표현되는 지 알 수 있으니 일부러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미리 계산하고 가늠하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면 RF카메라 보다는 SLR카메라를 추천합니다. 우연에 기대어 초점이 나가게 대충 사진을 찍어도 좋겠지만, 그리고 사진이 때론 운에 좌우되기도 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일 뿐이지요. 자신이 찍는 사진을 그런 우연성에 모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평소에 이런 배경에서는 뒷배경이 아주 아름답게 흐려지더라, 싶으시면 한번 과감히 모두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찍어보세요. 그리고 감을 익혀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해보세요. 얕은 심도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입니다.
심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근거리에 있는 피사체에 정확히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심도를 표현한다는 건 공간감을 표현하는 또다른 방법이잖아요. 즉 멀리 있는 건 흐리게 만들어서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를 더욱 부각시킨다는 건데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그럴싸한 공간감을 만들어줄 수 있거든요.
우리는 종종 얕은 심도의 사진을 찍을 때 무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피사체를 무조건 앞에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도 그런 구도는 어쩐지 재미가 없을 것 같지 않나요? 공간감이란 결국 부각시키고 싶은 피사체의 전후로 흐려짐이 발생할 때 좀 더 극대화 되니까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실제하는 세상의 이치와 결코 다르지 않아요. 파인더에 매몰되거나 찍고 싶어하는 피사체에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치가 그대로 사진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왼쪽의 사진을 볼까요. 초점을 맞춘 고양이는 뒤에 있지만 일부러 난간을 앞에 두게 구도를 잡아 흐리게 표현되게 했고 그덕에 고양이와의 거리감을 좀더 부각시킬 수 있었습니다.
좌측의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리창에 글자들이 많이 쓰여 있지만 심도표현으로 인해 흐려지면서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에 시선이 집중이 되고 있지요. 상단의 사진의 경우에는 장난감 버스의 전면부에 놓인 화단이 흐릿하게 표현이 되고 버스의 뒤도 흐리게 표현이 되어 피사체를 좀 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좌측하단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총 세잔의 물잔이 놓여있지만 가운데 물잔에 초점을 맞춘 게 포인트지요. 우측하단의 사진은 반영 사진인데 카메라로 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른 잎줄기들은 보케가 되어 흐려졌고 원경에 있는 나무가 선명하게 표현이 되어 독특한 원근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얕은 심도의 사진이 왜 시선을 끄는지에 이야기하기 전에 앞서 이야기 하다 말았던 Lenababy를 좀 더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아요. Lenababy는 빛망울을 이야기 할 때 잠깐 언급이 되었는데 이 렌즈는 매력적인 보케 뿐 아니라 독특한 공간감을 부여해주는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좌측과 하단의 사진을 한번 볼까요. 일반적인 렌즈라면 전기송전탑이나 전주처럼 멀리 있는 피사체를 저정도 크기로 프레이밍하고 초점을 맞추면 심도표현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든 곳에 초점이 맞은 사진이 나오죠. 하지만 Lensbaby는 다릅니다. 밋밋한 풍경사진에 심도를 표현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같은 선명함으로 표현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의 일부는 선명하게 ,일부는 보케가 되어 나타나게 됐죠.
이처럼 LensBaby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감을 일그러뜨리고 새로운 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심도표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사진은 2차원적인 예술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평면적인 표현만 가능해요. 그 평면적인 결과물에 입체성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 바로 심도이죠.
회화적인 표현
즉 밋밋해보이기 쉬운 2차원적 공간속에 입체적인 3차원적 공간을 표현하게 되고 이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특정 대상을 바라볼 때 켤코 카메라의 렌즈가 바라보는 것 처럼 얕은심도로 표현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의 눈은 아주 깊은 심도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그래야만 실제하는 사물들의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쉽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지극히 당연한 이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생경한 이미지, 낯선 이미지가 만들어질 때 기존의 이미지와 ‘꽝’ 하고 부딛치는 충돌지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실제하는 사물을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의 두 눈으로 직접보고 있는 실제하는 사물을 사진에 담는 작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물은 우리가 실제로 본 것과 전혀 다르게 표현이 된다는 거죠.
만약에 사진이라는 작업이 기본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면 심도를 표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그다지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어떤 피사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요. 실존하는 사물을 찍었는데 렌즈를 통해 맺힌 상은 그 실존하는 피사체와 다르게 표현이 되니 그 순간 ‘꽈광!’하고 충돌을 일으키는 겁니다.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와 카메라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즐겁게 충돌하며 반짝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얕은 심도의 사진은 사진보다 먼저 예술적 장르로 자리잡았던 회화의 자리까지도 넘보곤 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찍는 이의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는데다가 얕게 심도가 표현된 사진의 배경은 흡사 붓질을 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좌측의 사진과 위의 사진들처럼 특정하게 패턴을 이루고 있거나 모여 있는 사물이 배경으로 있는 경우에는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뒷흐림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얕은 심도의 사진에 더 빠져드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여튼, 이처럼 회화적인 느낌의 사진은 감성의 현을 통통 떨리게 만들고 그 현의 떨림은 작은 울림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말이죠, 사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건, 꾸준히 찍고 있는 사람이건 구분없이 얕은 심도의 사진에 빠져들 수 밖에 없지않나 싶어요.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한 사람을 앞에 두고 “너 아웃포커싱 좋아하는 거 보니 사진 초보구나!” 라고 소리치는 분을 가끔 보곤해요. 전 속으로 생각하죠. ‘이그. 올챙잇적 생각 못하는 사람 같으니라고.’ 에, 그런데 사실 저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 생각하고 보면 참 부끄럽지요. 여튼, 심도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로 그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는 건 위험해요. 얕은 심도의 사진을 좋아한다고 그 사람의 사진도 얄팍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 만큼 큰 오산도 없을 거예요. 심도는 표현의 한 방법일 뿐이고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얕은 심도를 좋아할 수 있고 말이죠.
이제 슬슬 이번 일기를 마칠 때가 온 것 같아요. 어떻게,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도움이 되셨다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 이번에도 여러분의 트랙백을 기다리겠습니다. 멋지게 뒤가 흐려진 사진을 보고 싶어요. 반짝거리면서 ‘꽈광’하고 충돌하는 그런 느낌의 사진을 말이죠.
참고로 다음 번 EastRain의 포토 다이어리 주제는 심도 깊은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