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from FILM/SLR 2009. 3. 23. 22:35


일단 무슨 종인지 물어보았지만 난 금방 까먹었다.
어려운 종 이름, 이기도 했지만 일단 너무도 생경했기에
사람 이름조차 쉽게 잊는 나는 그자리에서 바로 그 종의 이름을 잊었다.
이름은 있나요?
이름은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름이 없더라.
그냥 난 속으로 이 녀석의 이름을 지어버렸다.
취학전 아동도 아니고, 새야 새야 라고 부르면 웃기잖아.

삐삐

웃기지만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녀석은 결코 삐삐거리면서 울지 않지만
어쩐지 삐삐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았거든.
(이 또한 취학전 아동과 하등 다를 것 없는 작명센스)

삐삐의 가슴 앞으로 손가락을 가져가면
톡톡,  손가락 위로 오른다.
새의 발이 내 손가락 위로 올라올 때 난 깜짝 놀랐다.
너무 따뜻했거든.





삐삐는 눈을 감으면 웃는 얼굴이 된다.
검지위에 올려놓고 엄지로 슥슥 만져주면 저렇게 눈을 감고 웃는다.
아. 예쁘다.
부리 주변과 머리를 만져주면 계속 눈을 감고 예쁜 얼굴이 된다.
그러다가 쓰다듬기를 멈추면 녀석은 부리로 손가락을 문다.
계속 만져달라는 압박.





손등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어깨위에 앉아있기도 한다.
어깨위에 삐삐를 올려놓으면 해적선장이 된 기분.
으하하.
한참을 그렇게 삐삐와 놀았다.






그런데,
삐삐는 날 수 없다.
날개는 있지만 날 수 없다.
나도 이런 새를 키우고 싶지만,
어쩐지 그건 중성화 수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폭력이 가해져야 가능하다.
발정나지 않는 개보다
날지 못하는 새가 더 불쌍하잖아.
(그래서 타조는 언제나 불쌍하다)

언제 또 시간이 나면 나는 나 스스로 폭력을 가하지 못하는 대신,
그 폭력으로 다른 어떤 새를 소유하지 못하는 대신,
알량한 위선으로 삐삐를 만나러 갈테다.
어차피 내가 삐삐를 만나 해적선장이 되는 순간은
(피터팬을 꿈꾸는 건 너무 오바잖아.)
비현실적인 시간이니까,

아.
나도 내 어깨위로 올라오는 새 한마리 키우고 싶다.



PENTAX LX + a50mm F1.2

Kodak Pro Photo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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