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은 장미였다
막노동을 하시던 아버지는 외가의 도움으로 장미농장을 시작했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해였던가,
그제서야 나는 가정통신문 설문지에 아버지의 직업을 '건축업'이라고 적지 않았을 수 있었다
지난 설,
오랜만에 나를 키운 8할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허름한 농막에서 아버지와 함께 깊고도 얕은 잠을 잤다
나는 계속 잠을 뒤척였고,
아버지는 내 발 아래로 밀려난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나를 덮었다
나를 키운 8할은,
그 억센 가시로 아버지의 손을 찔러 댔던
붉은 장미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찌르는 가시와도 같은 자식이다
막노동을 하시던 아버지는 외가의 도움으로 장미농장을 시작했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해였던가,
그제서야 나는 가정통신문 설문지에 아버지의 직업을 '건축업'이라고 적지 않았을 수 있었다
지난 설,
오랜만에 나를 키운 8할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허름한 농막에서 아버지와 함께 깊고도 얕은 잠을 잤다
나는 계속 잠을 뒤척였고,
아버지는 내 발 아래로 밀려난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나를 덮었다
나를 키운 8할은,
그 억센 가시로 아버지의 손을 찔러 댔던
붉은 장미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찌르는 가시와도 같은 자식이다
PENTAX LX + Biometar 80mm 2.8
Fuji X-TRA400
Fuji X-TRA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