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가벼운 M이 필요하다면
라이카가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은 이유가 단지 브랜드 파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본 것이다. 우선 라이카의 디지털 시장 진입 시점을 잘 살펴봐야 한다. M시리즈 최초의 디지털 바디인 M8이 발표된 해는 2006년. 단지 주변 상황에 떠밀려 디지털 바디를 출시했다고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기준이나 시선에 따라 다르지만 2000년대 초반을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대세가 기운 시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카메라 제조사가 보급형 DSLR을 대거 찍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캐논의 5D를 시작으로 풀프레임 DSLR 경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즉 2000년대 중반은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최고조로 무르익은 시점인 것이다. 이 말은 단지 카메라의 종류만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이미지의 퀄리티가 필름이 담당했던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라이카는 바로 그 시점을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섣부르게 뛰어들기 보다는 디지털 매체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디지털바디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행보였지 대세에 이끌려가는 발걸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2010년, 라이카는 서브바디 개념의 APS-C 사이즈 센서를 장착한 콤팩트 디카인 X1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이번에 소개할 X2는 X1의 후속기종으로 엘마릿 24미리 f2.8렌즈를 장착해 콤팩트함을 잃지 않은 동시에 최상의 화질을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즉 빈번한 렌즈교환이 필요하지 않거나 환산화각 약 35mm의 초점거리를 즐겨 쓰는 경우라면 충분히 M을 대신해 필드를 뛸 수 있는 기종인 것. 작고 콤팩트한 크기에 DSLR급 화질을 제공하는 것도 X2의 매력이다. 사실 디지털 M 시스템은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필름바디 M시리즈보다 부담스러운 크기와 무게를 자랑한다. 따라서 M의 미니미처럼 보이지만 결과물은 M 못지않은 X2는 이래저래 매력적인 기기일 수 밖에 없다. 전작인 X1에 비해 AF속도 및 이미지 프로세싱이 월등히 좋아진 것도 메인급 서브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해주고 있다.
X2의 결과물은 누가 봐도 M디지털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컬러사진에서는 타사 제품의 사진에서 볼 수 없는 옅은 하늘색기운을 띠는 결과물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물론 화이트벨런스가 틀어진 결과는 아니다. 후보정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만들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은 콘트라스트를 유지하지만 녹색과 노란색이 유독 강조되는데 이것도 라이카 디지털 카메라 대부분이 가진 특징이다.
감도 따라 달라지는 흑백모드의 매력
디지털 카메라의 단점으로 손꼽히는 것은 다름 아닌 흑백사진이다. 흑백필름 특유의 입자감과 풍부한 계조는 디지털이 오랜 시간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X2는 어느 정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낮은 감도에서는 부드럽고 풍부한 계조를 지닌 흑백 사진을 제공하고 고감도에서는 깔끔하면서도 뭉개짐이 없는 동시에 까끌까끌한 느낌의 흑백사진을 뽑아준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수많은 흑백 필름이 여러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확대해서 봤을 때 똑떨어지는 맛의 입자감이라기 보다는 너저분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X2는 디지털의 특성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균일성을 최대한 감성적으로 끌어올려 필름에 뒤지지 않는, 어떤 면에 있어서는 더욱 개선된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준다. 예를 들자면 감도 1600의 흑백 필름은 특유의 거친 입자감과 콘트라스트가 장점이지만 입자가 굵어 디테일한 표현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X2는 고감도에서도 충분히 디테일이 살아있는 흑백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거칠면서도 섬세한, 동시에 균일성을 띤 입자감을 제공한다. 당연히 여러 면에서 사용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더욱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ISO 설정에 따라 마치 다른 종류의 필름을 끼워 사진을 촬영하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X2의 주목할만한 매력이다.
일상의 순간이 결정적 순간으로
아무리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고 가벼워 일상 어느 곳에서나 함께할 수 있어 이미 콤팩트카메라 시장의 상당부분을 스마트폰이 대체하지 오래지만 DSLR 등 대형 센서를 탑재한 디지털카메라 수효는 여전히 꾸준하다. X2는 크기가 작고 가볍다는 콤팩트카메라의 장점과 고화질 APS-C사이즈 센서를 탑재한 DSLR의 장점을 절묘하게 합친 카메라다. 여기에 라이카가 추구하는 우수한 광학적 성능과 기계적 완성도까지 더해졌다. 물론 가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타사의 대형센서 장착 콤팩트카메라에 비해 불합리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X2에 장착된 렌즈와 비슷한 스펙의 라이카 렌즈가 얼마에 판매되는지 상기시켜본다면 납득이 갈만한 수준이다.
카메라의 성격에 따라 용도는 달라진다.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담거나 자연스러운 순간들을 포착하는데 렌즈 교환식 카메라는 때론 계륵 같은 장비가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크고 무거운 장비는 들고다녀야하는 사용자에게, 혹은 그런 카메라로 사진을 찍혀야 하는 피사체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X2라면 자연스럽게 순간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더불어 기존의 콤팩트카메라나 스마트폰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깊이감 있는 결과물을 기대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일상의 순간을 기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다. 그러나 만약 그 순간을 라이카 X2와 함께 했다면 일상의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큰 센서는 유효하고 라이카는 카메라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