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라이카는 꽤나 보수적인 브랜드다. 렌즈교환이 가능한 풀프레임 RF 디지털 카메라 M시스템과 APS-C 사이즈 센서를 탑재한 콤팩트 카메라 X시리즈 외에 라이카만의 오리지널 카메라가 새로 탄생할 것이라 믿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느닷없이 APS-C 사이즈 센서를 탑재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이었고 어느 브랜드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감각의 카메라였다. 라이카 T는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에 등장한 라이카의 또 다른 결정적 카메라다.
제품 사양 <가격 238만원>
센서 APS-C 사이즈 CMOS 센서
유효화소수 1630만 화소
렌즈 시스템 Leica T 렌즈
지원 감도 자동, ISO 100~12500
화이트 밸런스 자동, 일광, 흐림, 할로겐, 그늘, 플래시, 수동
AF 시스템 콘트라스트 방식
AF 측정 방법 1점, 다중 패턴, 스팟, 얼굴 인식, 터치 AF
노출 모드 자동 프로그램, 자동 시간 설정, 자동 조리개 설정, 수동 설정
노출 측정 다중 패턴, 중앙 강조, 스팟
노출 보정 1/3EV 단위 ±3EV
셔터 스피드 30초~1/4000초
연속 촬영 약 5B/초, 동일하게 유지되는 촬영 주기의 경우 12회
후면 액정 3.7〃TFT LCD, 1.3백만 픽셀
무선 전송 규격 IEEE 802.11b/g/n(표준 WLAN 프로토콜)준수, 채널 1-11
암호화 방법: WiFi 호환 가능한 WPA™
비디오 촬영 형식 MP4
저장 매체 SD카드
바디 알루미늄 소재의 일체형 디자인
크기(WxHxD)134 x 69 x 33mm
무게 약 384g(배터리 포함)
라이카의 자부심으로 탄생
많은 사람들이 왜 라이카가 미러리스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는지 의아해한다. 이미 일본 카메라 회사가 선점한 시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획기적인 AF성능은 물론이고 풀프레임 미러리스까지 등장한 판국에 라이카 T의 입지는 좁을 것이라 관측도 나온다. 이렇듯 라이카를 둘러싼 시선은 꽤나 복잡해 보이는데 정작 라이카의 속내는 의외로 단순해 보인다.
라이카 T의 원형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사실 라이카는 촬상면과 렌즈 사이에 미러를 두지 않은 소형 카메라의 원조격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인류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사진들이 라이카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다. 바르낙이라 불리는 m39 스크루 마운트 카메라의 시대를 끝내고 출시된 M3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그간 라이카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던 일본 카메라 회사들이 일제히 SLR 카메라로 전향한 계기도 M3 때문이었다. 이렇듯 카메라의 중심부에 미러를 박아 넣지 않은 카메라를 100년 동안 만들어온 라이카에게 미러리스 카메라는 새로운 매커니즘이 아니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상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단순명료함이 그대로 반영된 카메라가 바로 라이카 T인 것. 즉 라이카가 왜 T 시스템을 발표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우문일 수 있다. 당연한 것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T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T 시스템은 단순히 카메라만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마운트로 설계된 렌즈까지 함께 생산하기 때문이다. 어댑터를 통해 기존의 M마운트 렌즈를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나 라이카 T의 기능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AF가 지원되는 전용 렌즈가 필수다.
앞서 이야기한 ‘단순함’이라는 철학은 카메라의 매커니즘뿐 아니라 외형적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디자인 모두에 적용됐다. 우선 통 알루미늄 바를 깎아 만든 유니바디 프레임부터 심플함의 극치다. 카메라의 후면부에는 어떤 버튼도 배치하지 않았으며 바디상판에는 오른손 손가락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전원버튼과 동영상 촬영 버튼, 그리고 두 개의 휠만 존재할 뿐이다. 현재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디지털 카메라가 만들어졌지만 라이카 T만큼 버튼을 최소화한 기종은 없었다. 기존의 카메라들이 후면에 배치했던 많은 기능들은 터치 스크린으로 대체하거나 과감히 생략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라이카 T는 프리뷰 버튼이 없다. 대신 후면 터치 액정을 위에서 아래로 쓸면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든 메뉴 진입 및 설정은 액정을 터치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이러한 과감한 디자인 적용은 라이카가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있음을 말해준다. 카메라의 첫 인상은 디자인이다. 그런데 라이카는 복고를 지향하는 최근 트렌드와 달리 혁신적이고 과감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짜 레트로 디자인이란 외형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최고의 자리가 아니라면 시도하지 못했을 도전이다.
혁신적인 외형 안에 담긴 본질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디자인은 자칫 호기로움으로만 끝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직접 라이카 T를 만져보지 못하고 눈으로만 봤을 때 드는 기우에 불과하다. 라이카는 단순히 버튼만을 생략한 것이 아니라 이 카메라를 구매한 타깃층이 사용할 기능 외에는 어떤 기능도 배려하지 않고 있다. 극단적일 수 있겠으나 스냅사진이나 일상사진, 풍경사진을 찍는 유저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능만 전면에 내세웠다. 더불어 해당 스타일의 사진을 촬영하는데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배제했다.
오른손 손가락이 닿는 곳에 위치한 버튼과 휠은 오로지 사진을 찍는 순간에만 집중하도록 도와주는데 이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해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한다. 처음에는 카메라에 설치된 버튼이 적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적응하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셔터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디지털 카메라의 발전은 수많은 최신 기술을 담보하며 진행됐다. 이런 신기술은 더욱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지만 정작 일반 사용자를 위한 배려는 줄어들고 있다. 수많은 기능을 내세우는 최신 카메라를 구매한 소비자는 어떤가. 끝도 없이 스크롤 되는 메뉴 화면 중에서 정작 자주 쓰는 기능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를 누르기 전에 수도 없이 메뉴화면을 들락날락거린다. 그래야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기존의 카메라 회사들이 깨알같은 홍보 덕분이다. 혹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최신 기술이 집약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초고속 AF와 수십 개의 측거점이 깜빡거리는 카메라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사진가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라이카 T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카메라다. 그러나 AF모드를 설정하고 어느 피사체를 트레킹할지 정하는 것이 전혀 필요 없는 사진가에게는 오히려 신경쓰이고 거추장스러운 기능일 수 밖에 없다.
라이카는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유저를 포괄적으로 타깃팅 하지 않는다. 다만 라이카를 선택한 사진가에게 최고의 카메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특히 T 시스템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사진 찍는 순간’에 쏟아 부은 흔적이 역력한 카메라다.
이제 라이카 T를 세세히 뜯어보자. 샤프하면서도 유려한 유니바디 프레임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 이후에는 곧장 어떤 버튼도 보이지 않는 후면이 눈에 띈다. 후면 액정은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자랑한다. 라이카 T도 디지털 카메라다 보니 세세한 설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기능을 기존 디지털 카메라처럼 일렬로 늘어놓지 않는다. 사용자가 많이 쓰는 메뉴만 골라서 원하는 차례대로 첫화면에 배치할 수 있다.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는 물리적으로 사용자 펑션 버튼에 한계가 있었던 것에 반해 후면 터치 액정을 활용한 라이카 T는 훨씬 직관적인 동시에 보다 많은 사용자 정의 버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기본적으로 바디 내에 탑재된 16GB의 내장 메모리도 사진가를 위한 세심한 배려다. 카드리더기에 메모리카드를 꽂아두고 나온 날의 허망함은 누구나 겪어봤을 텐데 라이카는 이런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무선전송 시스템을 탑재해 사진을 스마트 기기로 곧장 옮길 수 있는 기능도 라이카의 행보치고는 꽤나 과감한 느낌이다. 새로운 개념의 바디 일체형 케이스라 볼 수 있는 라이카 T 스냅은 스크래치가 나기 쉬운 알루미늄 바디를 보호하는 동시에 다양한 색상으로 개성을 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대부분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DSLR에 대한 트라우마로 똘똘 뭉쳐 있었다. 어떻게든 DSLR을 넘어서야만 했고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강조한 것은 ‘DSLR급’, 혹은 ‘DSLR을 뛰어넘는’ 등의 수식어였다. 새로운 기술, 한 발 더 나아간 성능을 강조하며 DSLR 사용자의 눈을 돌리는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라이카 T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사용자에게 다가간다. 기능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본질을 꽤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는 걸 강조한다. 그것도 아주 세련된 모습으로. 사실 라이카에 대한 호불호의 근원은 기능이나 가격이 아니라 그 철학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