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볼링장이 남아 있는 동네가 흔치 않다.
20세기 소년에 나왔던 신령님이 한창 주가를 날리던 시절과 비슷한 때가 한국에도 있었다.
사진의 저 볼링장도 한때는 온가족의, 온동네 사람들의 그라운드였다.
물론 지금은 조금 시들하지만.
차이나타운은 어느쯤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기운을 풍긴다,
한해에 둬번씩은 찾는데,
사실 그다지 변하는 게 없다.
신포시장 닭강정도 그때 그 맛이고.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쪽으로 내려오면 보이는 모텔 뒷편의 주차장도 그대로다.
물은 항상 고여있고,
'주차'라고 빨간 글씨로 적어놓은, 반쯤 부서진 플라스틱 수조도 그대로다.
사실 이 모텔에서 잘 일도 없는데 출사를 나서면 꼭 이 주차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무슨 드라마를 찍었다는 집, 혹은 그 집의 옆집인데
폐가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집이 저렇게 흉해진다.
사람이 살지않고,
사람이 찾지 않고,
더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곳은 쉽게 잊혀진다.
사실, 집이건 사람이건 다 똑같다.
항상 누군가가 들락날락 거릴 수 있도록 열려있어야 한다.
아, 변한게 하나 있긴하다.
자유공원 아래에 제물포구락부를 복원해놨는데 글쎄, 내가 보기엔 영 아니더라.
뭐 말로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멋드러진 사교클럽이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에 거길 안가봤으니 알 수도 없고
설사 그 시절에 살았다 하더라도 조선인으로 그곳에 들락날락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테고.
지금 봐도 저걸 왜 복원해서 저렇게 혈세를 낭비하나 싶고.
당시 한국에 들락날락 거리던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열강의 놈팽이 들이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했을
그런 치욕적인 공간을 왜 다시 복원했나 싶을 뿐.
인천문화원으로 잘 쓰다가 왜 저런 뻘짓을 했나몰라.
차라리 아주그냥 을사늑약, 러일협약 기념비를 세우시지 그래. -_-
꼴비기 싫어서 밖에서 제물포 구락부로 올라가는 계단만 찍었, 던 건 아니고 마땅히 올릴 사진이 없어서 이거라도...
차이나타운을 찾으면 항상 찍는 이 붉은 문.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자리한 문인데,
언제봐도 강렬하다.
난 언제나 차이나타운의 입구에 위치한 붉은 패루보다 이 문을 보고서야 차이나타운에 온 걸 실감하곤 한다.
차이나 타운을 찾는 또다른 재미는 바로 돌아오는 전철.
이렇게 사람이 없는 한산한 1호선 객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서너 정거장 더 가면 사람들이 들어차긴 하지만, 그래도 출발전의 묘한 느낌은 다른 역과 또 다르다.
(당연히 목적지까지 앉아서 갈 수 있다.)
차이나 타운에 가서 자장면 먹는 건 좀 식상하고,
(최초의 자장면을 만들었다는 그 음식점, 난 별로더라.)
차라리 동인천역에 내려서 신포시장 닭강정을 뜯고난 후
배를 두드리며 자유공원으로 올라가서 차이나 타운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낫다.
봄에는 자유공원 벚꽃이 만발하니 그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자유공원에서 동인천역으로 내려오는 길가에 있는 야구배팅 연습장의 어이없는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찬호가 왜 투구 자세를 하고서 손에 배트를 들고 있냐고요...)
겨울에는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꽤 춥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겨울에 차이나 타운을 찾아야 그곳의 오래된 분위기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으니
제대로 추위가 깔리는 1월에 이곳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