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은 철저하게 기존의 연극을 부정합니다.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건, 객석까지 환하게 조명이 들어온다는 사실이죠.
제가 C열1번 좌석에서 관람을 했는데 가장 앞줄이라 몇번이나 배우들과 눈을 마주쳤는지 몰라요.
배우가 관객과 눈을 마주치고, 무대위로 올라 오라는 손짓을 할때 이미 '관객모독'은 기존의 연극을 모독하기 시작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진짜 연극을 보여준답시고 그들이 보여준 행위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이야기' 즉 네러티브를 비웃기까지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신파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대사는 기존의 연극이 이 시대와 얼마나 동떨어진 존재인가 라고 성토합니다.
즉 몸은 신파 연기를 하지만 대사는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마치 논문에 필적할 정도의 딱딱하고 메마른,
연극에 대한 말을 주절거릴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돈때문에 사랑을 버린 연기를 하는 여배우의 입에서
연극이 어쩌네 허구가 어쩌네 하는 말이 튀어나오는 거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이러니 하게도 '관객모독'은 기존의 연극이,
네러티브가 척추가 되는 연극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웃기게도 이 순간 관객들은 그들이 뱉어내는 대사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거든요.
그 대사들은 기존의 연극을 부정하고 있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어요.
관객들은 그저 배우들이 몸짓으로 하고 있는 연기에서 이야기를 읽어냅니다.
그리고 몸짓뿐인 그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할 뿐입니다.
최초에 이 연극이 세상에 나왔을 때,
어쩌면 그 순간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66년 독일에서 첫 선을 보인 그 당시 이미 연극은 영화라는 장르에 수많은 관객을 빼앗긴,
뒷방 늙은이 같은 존재였겠지요.
그리고 원작의 작가 피터 한트케(Pter handke)는 새로운 시대의 연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지요.
그런데 말이죠, 40년이 지난 지금 그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들이 과연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제시했던 실험적인 연극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연극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준 꼴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연극 전공자나 연극판에서 종사하는 분, 일부 곡급 관객들이 아니라면
그런 골치아픈 이야기와 주제에 집중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더더군다나 요즘처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여진 관객들이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관객모독이 대중적인 재미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아닙니다.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고, 그것이 공연에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는 꽤나 재미있게 공연을 관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