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사진을 찍으시는 많은 분들이 소위 말하는 아웃포커싱(이 단어는 잘못된 영어 표기의 대표적인 예죠. 본문의 다음 부터는 뒷흐림 등의 말로 표현됩니다.)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라고 예외는 아닌데, 2004년에 찍었던 왼쪽의 사진이 저를 사진이라는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 들였지요. 무겁고 폼도 나지 않는 Fed 5C라는 러시아 카메라로 찍었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것 같아요. 10월의 날씨도 참 좋았고 말이죠. 그 카메라에 달려있던 싸고 성능 좋은 Industar 렌즈도 한 몫했었고요.
저 사진을 받아들고 ‘아, 멋지게 뒤가 흐려지는 사진이야말로 취미사진의 로망이구나!’라고 생각했으니 뭐 말 다했지요.
뒤가 멋진게 흐려진 사진을 찍고는 마구 두근거렸던 그 느낌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그런 사진을 직접 찍지 않더라도 누군가 자신의 인물사진의 배경을 멋지게 날려서 찍어줬을 때의 그 놀라움을, 기억하십니까?
이제 그 아련한 뒷흐림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깊은 정도가 되겠네요. 길이로 치자면 깊다는 표현은 길다는 것으로, 얕다는 표현은 짧다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초점이 맞는 길이, 즉 범위가 얼마나 되느냐를 말하는 것인데요. 심도가 얕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은 구간이 짧아서 그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심도가 깊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은 범위가 길어 전체적으로 사진이 쨍하게 나온 경우를 말하지요.
심도를 표현하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는 크게 세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우선 사진이 찍히는 필름 혹은 센서의 촬상면적입니다. 면적이 넓으면 넓을 수록 심도표현의 폭이 넓습니다. 두번째는 렌즈입니다. 렌즈의 밝기가 밝고 표준이상의 망원계열 렌즈일수록 더욱 얕은 심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초점이 맞은 피사체와의 거리입니다. 같은 화각의 같은 밝기의 렌즈로 같은 피사체를 찍더라도 얼마나 가까이에서 찍는가에 따라 심도가 다르게 표현됩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우측과 하단의 사진은 모두 120 필름을 사용하는 중형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필름면적이 넓은데다가 꽤나 가까이에서 촬영했죠. 그덕에 초점이 맞은 범위가 상당히 좁아졌고 렌즈의 조리개 값을 5.6 정도로 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얕은 심도의 결과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촬상면적이 좁다해도 아주 근거리에서만 찍는다면 뒤가 흐려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휴대폰 카메라,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에 아무리 CCD의 크기가 작다해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을 찍게 되면 얕은 심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듯이 말이죠.
촬상면적과 관련해 좀 더 확실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앞서 촬상면적이 넓을 수록 심도가 더 얕게 표현이 된다고 했는데 말이죠, 좌측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을 한번 보겠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춘 사진입니다. 차이점이라 한다면 사용한 카메라의 포맷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좌측의 정방형 사진은 120 중형필름으로 촬영했고 아래의 사진은 35mm 일반 필름으로 촬영했습니다. 35mm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좌로 더 많은 부분이 나와 비교하기에 조금 애매해 같은 비율로 잘라봤습니다.
35mm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 값이 2.0 정도로 꽤 밝게 개방이 된 상태였고 120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카메라의 조리개 값이 5.6 이상으로 조여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점이 맞은 주황색 장난감의 전후 뒷흐림을 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0 필름의 경우에는 전면에 놓인 빨간색 장난감의 형체가 아주 뿌옇게 표현된 반면에 35mm 필름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그보다 선명하게 표현이 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아주 원거리에 있는 건물의 흐려진 상태만 봐도 두 사진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진의 심도에 대한 광학적인 설명은 아주 길고 아주 복잡합니다. 저도 똑 부러지게 수식을 보여주며 심도에 대해 설명해드리기 힘들정도입니다. 그저 대략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밝은 렌즈, 망원 렌즈,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 넓은 촬상면적의 경우에 더 얕은 심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누구나 멋진 인물사진을 찍고 싶어해요. 누구나 자신이 아끼고 사랑해마지 않는 주변사람들을 파인더에 담아 한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예, 바로 그때가 심도가 얕은 인물사진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죠.
왼쪽의 사진은 3월쯤에 찍은 사진입니다. 3월인데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날로 기억해요. 코가 듬직하게 생긴 저 녀석은 담배를 한대 입에 물고 한껏 폼을 잡았지요. 같이 일하던 동생인데 가끔 저렇게 분위기를 잡아서 멋진 모델이 되어주곤 했습니다.
사진을 찍었던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일단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F3.5)했고, 빛이 모자란 상황이라( ISO 160 필름사용)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덕에 배경은 꽤 많이 흐려졌고 날리던 눈발은 붓질을 한 것처럼 궤적으로 그려졌네요. 참고로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라 135필름을 쓰는 일반 소형카메라에 비해 심도가 더 얕게 표현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인물에 노출을 맞추느라 배경의 색이 많이 날아갔지요. 그덕에 중앙에 위치한 인물이 더욱 부각되었네요. 마치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남자인양 멋지게 폼을 잡은 게 무색하지 않게 사진이 나와준 겁니다. 그래요, 적어도 사진속의 저 친구는 이순간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거죠.
이맛에 얕은 심도로 인물사진을 찍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단의 두 사진은 모두 꽤 밝은 렌즈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F1.2 근방으로 조리개를 맞추고 촬영을 했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렌즈를 개방하면 할 수록 피사체가 소프트하게 표현됩니다.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이 흐릿하게 표현되는 건 당연하고 초점이 맞은 부분 조차도 조리개를 조인 사진보다 훨씬 소프트하게 표현이 되죠. 혹자는 렌즈의 성능을 살려 촬영하기 위해서는 한 단이라도 조리개를 조이라고 말하지만 말이죠. 취향의 차이긴 합니다만, 일물사진을 찍을 때(특히 여성?)는 소프트하게 표현되는 것도 나름 예쁨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에 저는 무조건 최대개방입니다.(과연?)
사실 구도의 정석은 정중앙에 피사체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모든 상황에서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심도를 얕게 표현한 사진은 중앙에 피사체를 두었을 때 오히려 사진이 사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우측상단의 백사실계곡에서 촬영한 저 사진도 그런 예중에 하나죠. 비록 피사체가 화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정중앙에 배치되었지만 얕은 심도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인물이 더욱 부각되고 있거든요.
물론 무턱대고 심도를 얕게만 한다고 좋은 인물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만, 얕은 심도에서 자신의 내공을 상회하는 그럴싸한 사진이 나와줄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반스탑 혹은 한스탑의 밝기를 더 취하기 위해 두배 가량의 돈을 투자해 렌즈를 기변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형편이 된다면 그다지 말릴 일은 아닙니다만 무리해서까지 밝은 렌즈를 구비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거든요. 가장 저렴하게 한스탑의 셔터스피드를 확보하는 방법은 필름 감도를 높이는 것이고 돈들이지 않고 조금 더 얕은 심도를 확보하는 방법은 한발짝 더 피사체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원래 빛망울 이야기는 따로 할 생었는데 딱히 예제 사진으로 쓸만한 사진이 많지가 않아서 이번 기회에 같이 이야기할까해요.
제가 디지털 카메라는 그다지 잘 모릅니다만, 똑딱이 디지털카메라의 대부분이 접사를 제외하고는 뒷흐림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요.(최근에 시그마에서 출시된 DP-1, DP-2는 예외로 해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찌나 뒷흐림을 갈망하였는지 일부 똑딱이 카메라는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특정부분을 흐릿하게 만들어주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포토샵의 블러효과와 다를 게 없지요. 뜬금없이 블러타령이냐 하시면 바로 빛망울때문이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상단의 사진을 한번 볼까요. 배경을 자세히 보시면 별모양의 빛망울이 맺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빛망울의 맺힘이 단순히 배경을 흐리게 만들어주는 블러 효과와의 차이점이죠. 렌즈 조리개의 모양이 빛망울의 맺힘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데, 상단의 저 사진을 찍은 렌즈는 특정구간에서만 별모양으로 조리개가 조여집니다. 참고삼아 올린 부분 확대 사진을 보면 별모양의 빛망울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우측과 하단의 사진은 조리개가 원형으로 조여지는 렌즈로 촬영을 했어요. 그덕에 동그랗고 몽글몽글한 빛망울이 맺혔지요. 이처럼 사진의 뒷흐림에 빛망울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우선 예제 사진을 보셔서 알겠지만 나뭇잎이 우거진 곳을 배경으로 하고 근거리에 있는 사물을 촬영하면 빛망울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에 전구등의 반짝이는 사물이 있을 때에도 빛망울이 맺히구요. 다만 초점을 맞춘 피사체가 너무 멀리 있을 경우에는 뒷흐림이 나타나지도, 빛망울이 맺히지도 않습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심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번에는 조금 독특한 빛망울들을 보시겠습니다. 음, 사실 이 사진을 찍은 렌즈로 리뷰를 하나 작성해야 하는데 워낙 찍어놓은 사진이 없다보니 이런 기획 포스팅의 작은 공간만 차지하게 되었네요.
이 사진들은 LensBaby라는 특이한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주밍(zooming)+시프트(shift) 효과가 동시에 가능한 독특한 렌즈죠. 만듦새는 상당히 변태스럽고(?) 조금 조잡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처럼 개성적인 뒷흐림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저처럼 신기한 물건 보면 못참는 사람들에게 must have 아이템이 되곤 합니다.
예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LensBaby는 빛망울과 뒷흐림을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합니다. 초점을 맞춘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사진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전체적인 공간감을 일그러뜨리기도 합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3장의 사진은 과장된 빛망울 표현하고 있지요. 다른 꼭지에서 보여드릴 LensBaby의 사진을 보시면 사람들이 사진의 다양한 심도표현에 빠져드는 이유를 짐작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흔들린 사진,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 열거한 세가지는 사진을 찍을 때 기본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들 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니랍니다. 마치 로버트카파의 흔들린 사진이 현장감을 더해주기도 하는 것 처럼 말이죠.
초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반드시 특정 피사체에 정확하게 초점이 맞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빛망울이나 뒷흐림 그자체로 아름다운 경우에는 고의적으로 초점이 나간 사진을 찍는다해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자주 찍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가끔 이런 사진을 찍을 때가 있지요. 사실 제가 자주 쓰는 기종이 RF카메라인지라 파인더를 통해 심도를 미리 가늠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춰야죠. 하지만 SLR카메라의 경우에는 파인더를 통해 찍는 사진의 심도가 어떻게 표현되는 지 알 수 있으니 일부러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미리 계산하고 가늠하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면 RF카메라 보다는 SLR카메라를 추천합니다. 우연에 기대어 초점이 나가게 대충 사진을 찍어도 좋겠지만, 그리고 사진이 때론 운에 좌우되기도 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일 뿐이지요. 자신이 찍는 사진을 그런 우연성에 모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평소에 이런 배경에서는 뒷배경이 아주 아름답게 흐려지더라, 싶으시면 한번 과감히 모두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찍어보세요. 그리고 감을 익혀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해보세요. 얕은 심도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입니다.
심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근거리에 있는 피사체에 정확히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심도를 표현한다는 건 공간감을 표현하는 또다른 방법이잖아요. 즉 멀리 있는 건 흐리게 만들어서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를 더욱 부각시킨다는 건데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그럴싸한 공간감을 만들어줄 수 있거든요.
우리는 종종 얕은 심도의 사진을 찍을 때 무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피사체를 무조건 앞에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도 그런 구도는 어쩐지 재미가 없을 것 같지 않나요? 공간감이란 결국 부각시키고 싶은 피사체의 전후로 흐려짐이 발생할 때 좀 더 극대화 되니까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실제하는 세상의 이치와 결코 다르지 않아요. 파인더에 매몰되거나 찍고 싶어하는 피사체에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치가 그대로 사진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왼쪽의 사진을 볼까요. 초점을 맞춘 고양이는 뒤에 있지만 일부러 난간을 앞에 두게 구도를 잡아 흐리게 표현되게 했고 그덕에 고양이와의 거리감을 좀더 부각시킬 수 있었습니다.
좌측의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리창에 글자들이 많이 쓰여 있지만 심도표현으로 인해 흐려지면서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에 시선이 집중이 되고 있지요. 상단의 사진의 경우에는 장난감 버스의 전면부에 놓인 화단이 흐릿하게 표현이 되고 버스의 뒤도 흐리게 표현이 되어 피사체를 좀 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좌측하단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총 세잔의 물잔이 놓여있지만 가운데 물잔에 초점을 맞춘 게 포인트지요. 우측하단의 사진은 반영 사진인데 카메라로 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른 잎줄기들은 보케가 되어 흐려졌고 원경에 있는 나무가 선명하게 표현이 되어 독특한 원근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얕은 심도의 사진이 왜 시선을 끄는지에 이야기하기 전에 앞서 이야기 하다 말았던 Lenababy를 좀 더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아요. Lenababy는 빛망울을 이야기 할 때 잠깐 언급이 되었는데 이 렌즈는 매력적인 보케 뿐 아니라 독특한 공간감을 부여해주는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좌측과 하단의 사진을 한번 볼까요. 일반적인 렌즈라면 전기송전탑이나 전주처럼 멀리 있는 피사체를 저정도 크기로 프레이밍하고 초점을 맞추면 심도표현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든 곳에 초점이 맞은 사진이 나오죠. 하지만 Lensbaby는 다릅니다. 밋밋한 풍경사진에 심도를 표현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같은 선명함으로 표현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의 일부는 선명하게 ,일부는 보케가 되어 나타나게 됐죠.
이처럼 LensBaby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감을 일그러뜨리고 새로운 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심도표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사진은 2차원적인 예술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평면적인 표현만 가능해요. 그 평면적인 결과물에 입체성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 바로 심도이죠.
회화적인 표현
즉 밋밋해보이기 쉬운 2차원적 공간속에 입체적인 3차원적 공간을 표현하게 되고 이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특정 대상을 바라볼 때 켤코 카메라의 렌즈가 바라보는 것 처럼 얕은심도로 표현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의 눈은 아주 깊은 심도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그래야만 실제하는 사물들의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쉽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지극히 당연한 이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생경한 이미지, 낯선 이미지가 만들어질 때 기존의 이미지와 ‘꽝’ 하고 부딛치는 충돌지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실제하는 사물을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의 두 눈으로 직접보고 있는 실제하는 사물을 사진에 담는 작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물은 우리가 실제로 본 것과 전혀 다르게 표현이 된다는 거죠.
만약에 사진이라는 작업이 기본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면 심도를 표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그다지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어떤 피사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요. 실존하는 사물을 찍었는데 렌즈를 통해 맺힌 상은 그 실존하는 피사체와 다르게 표현이 되니 그 순간 ‘꽈광!’하고 충돌을 일으키는 겁니다.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와 카메라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즐겁게 충돌하며 반짝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얕은 심도의 사진은 사진보다 먼저 예술적 장르로 자리잡았던 회화의 자리까지도 넘보곤 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찍는 이의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는데다가 얕게 심도가 표현된 사진의 배경은 흡사 붓질을 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좌측의 사진과 위의 사진들처럼 특정하게 패턴을 이루고 있거나 모여 있는 사물이 배경으로 있는 경우에는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뒷흐림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얕은 심도의 사진에 더 빠져드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여튼, 이처럼 회화적인 느낌의 사진은 감성의 현을 통통 떨리게 만들고 그 현의 떨림은 작은 울림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말이죠, 사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건, 꾸준히 찍고 있는 사람이건 구분없이 얕은 심도의 사진에 빠져들 수 밖에 없지않나 싶어요.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한 사람을 앞에 두고 “너 아웃포커싱 좋아하는 거 보니 사진 초보구나!” 라고 소리치는 분을 가끔 보곤해요. 전 속으로 생각하죠. ‘이그. 올챙잇적 생각 못하는 사람 같으니라고.’ 에, 그런데 사실 저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 생각하고 보면 참 부끄럽지요. 여튼, 심도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로 그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는 건 위험해요. 얕은 심도의 사진을 좋아한다고 그 사람의 사진도 얄팍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 만큼 큰 오산도 없을 거예요. 심도는 표현의 한 방법일 뿐이고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얕은 심도를 좋아할 수 있고 말이죠.
이제 슬슬 이번 일기를 마칠 때가 온 것 같아요. 어떻게,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도움이 되셨다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 이번에도 여러분의 트랙백을 기다리겠습니다. 멋지게 뒤가 흐려진 사진을 보고 싶어요. 반짝거리면서 ‘꽈광’하고 충돌하는 그런 느낌의 사진을 말이죠.
참고로 다음 번 EastRain의 포토 다이어리 주제는 심도 깊은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
최근에 조금 심도깊게 고민해볼만한 질문을 들었어요. '토이카메라, 작년 쯤 부터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그 유행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 같으세요?' 라는 질문을 들었는데 것 참, 그냥 흘려들을 질문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하긴, 다들 궁금해 할 법도 합니다.최신 DSLR에 토이카메라 효과 같은 메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시대가 왔으니 말이죠.
세상에나. 언제나 선예도가 어떻고 화질이 어떠하고 화소는 또 얼마나 높은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광고하는 디지털 카메라들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토이카메라'효과를 집어 넣었다는 군요.실제로 그 카메라를 써보지 않았지만 기사를 보면 주변부를 어둡게 만드는 비네팅 효과를 주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건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들이 지향하던 것과는 정 반대방향에 있는 기능이 아니던가요? 비네팅은 싸구려와 저질을 지칭하는 또다른 단어 아니던가요?
어떤 기업이든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트렌드를 유심히 살펴본 뒤에 상품을 내놓기 마련입니다. 카메라 회사라고 별다를 건 없겠지요. 즉 디지털 카메라에 '토이카메라' 효과를 떡하니 집어 넣었다는 건 많은 유저들이 그 기능을 원하고 있거나 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겠지요. 이쯤 되면 우리는 토이카메라가 '유행'이구나, 라고 쉽게 유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토이카메라'는 그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질, 한번 '빵'하고 터지고 말 단순한 유행일까요?
:: 토이카메라는 LOMO LC-A의 아류?
티스토리 사진편집 화면
싸이월드 사진편집 화면
토이카메라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홀가
위의 두 화면은 각각 티스토리와 싸이월드의 이미지 업로더 편집창입니다. '로모'라는 글자가 눈에 띄는군요. 예, Lomo LC-A로 대표되는 비네팅 효과를 인위적으로 덧씌우는 기능입니다. Lomo LC-A, 토이카메라 등의 특징인 비네팅 현상을 웹에서 손쉽게(그러나 어설프게) 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국내에서는 Lomo LC-A에 덕에 비네팅이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갑니다. 성능이 떨어지는 렌즈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능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 중요하다 등등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구태의연한 설전을 벌이고 있지요. 사실 전 그런 문제로 왜 싸워야 하나 싶어요. 다 사실이잖아요. 렌즈의 광학적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Lomo LC-A가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잖아요.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격이요? 가격이 문제가 된다면 안쓰면 그만이고 가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다른 사람의 취향을 무시하거나 깎아 내려야만 하는지 모르겠군요. 이야기가 잠시 엉뚱한 곳으로 흘렀네요. 다시 토이카메라로 돌아가서 말이죠,
토이카메라는 과연 작년 즈음해서 갑자기 폭발한, 그저 스치고 지나갈 유행일 뿐일까요? 글쎄, 저는 그렇게 쉽게 단정짓기 힘들다고 봐요. 그저 지금의 상황들만 놓고 보면 정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듯 보일 수도 있고, 토이카메라들이 Lomo LC-A의 저렴한 대안인 것 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렇게 간단히 결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수 있어요. 국내의 토이카메라 1세대로 칭할 수 있는 유저들은 국내에 Lomo LC-A가 막 상륙하던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Lomo LC-A 뿐 아니라 홀가, 다이아나(복각이전 오리지널 모델), 러시안 토이카메라 등을 두루 섭렵하며 점점 매니아층을 늘여나갑니다. 90년대 중후반의 일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Lomo LC-A는 로모그래피의 홍보 공세로 급격히 시장을 넓혀나갔고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지금,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많은 토이카메라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LOMO LC-A의 대중적 인기는 홍보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쯤에서 우리는 일부 호사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토이카메라는 Lomo LC-A의 아류, 혹은 적자 쯤의 위치에 놓인 소위 말하는 어설픈 '짝퉁'에 불과할 뿐일까요?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Lomo LC-A가 대중적으로 먼저 알려졌고 그 이면에는 선동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홍보 공세가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초기의 토이카메라 1세대들은 딱히 특정 토이카메라만 골라서 사용했다고 보기 힘들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카메라들을 가리지 않고 사용했습니다. Lomo LC-A가 아니더라도 독특한 느낌의 비네팅과 주변부 화질저하현상을 지닌 토이카메라들을 두루 사용했던 것이지요. 다만 로모그래피의 홍보 공세(?) 때문에 몇년간 균형있게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봐요. 그리고 이제야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독특한 이미지들을 만들어주는 다른 카메라들도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즉 단순히 Lomo LC-A의 아류다, 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베를린장병이 무너질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 처럼, 우리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가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라는 명제에서 곤혹스러워 하지만 어떤 일이건 그 근원이 되는, 우선되었던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LOMO LC-A의 인기가 로모이즘이니하는 말들로 포장되고 그 자체로써 온전히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문화인양 자리잡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LOMO LC-A 이전에, 토이카메라들이 지금의 위치를 가지기 이전에 그 문화적 양분이 되고 토대가 되는 근본적인 문화현상이 있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Lomo LC-A의 대중적 인기가 아무리 홍보의 승리라 하더라도 설득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없었겠지요. 그렇다면 그 설득력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골치아픈 문예사조사를 들먹거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이야기 해보자구요. 냉전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정말이지 어떻게 정의내려야 될지 모를 정도로 급격히 변화해갑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를 명확히 할 수도 없는 국가간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어느날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하루 아침에 누군가는 로또로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급락한 주식에 목을 메고 마는, 정말 당장 1분 1초도 쉽게 내다볼 수 없는 세계속에 살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했을까요. 정확하게 프레이밍을 하고, 노출을 정확히 재고, 딱딱 칼같이 맞아 떨어지는 사진을 찍고 싶었을까요? 이토록 불확실한 것들로만 가득찬 세계에서?
1960년대에 만들어진 DIANA 오리지널 모델
젊은이들은 오래전에 만들어졌던 DIANA라는 어설픈 중형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와 비슷한 형태의 홀가와 같은 카메라뿐 아니라 구소련에서 생산된 콤팩트 카메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카메라들이 지니는 특성은 최신 카메라들에 비해 당최 결과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카메라들이 만들어주는 이미지는 명징한 것 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게 기존의 이미지와 차별성을 지니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의 몇몇 젊은이들은 그것이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 될것으로 판단, Lomography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Lomo LC-A라는 구소련에서 생산되었던 콤팩트 카메라를 판매하게 됩니다.(첨언하자면 Lomography와 LOMO는 별개의 회사입니다.)
2009년 현재 토이카메라의 인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 조금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나요? 예, 그렇습니다. 토이카메라의 인기는 Lomo LC-A의 유명세에 편승해 급작스레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거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시대의 커다란 문화속에서 조금씩 뿌리를 뻗어왔고 이제야 조금씩 잎을 틔우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Lomo LC-A건, 토이카메라건 대중에게 이만큼 알려지고 수많은 유저를 양산하고 있다는 건 그 카메라들이 지금 이 시대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죠.
:: 당신의 일상담기, 비록 내일을 모를지라도
제가 조금 쓸데없이 복잡하게 이야기를 한 것 같군요. 불활실성이니 어쩌니 해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어느 시대에 살았건 당장 내일일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겠지요. 물론 예측범위라는 것이 있다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자신의 의지대로, 예측대로만 굴러가던가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한 거죠. 1분 1초가 모여 하루가 되는 거 잖아요.
토이카메라는 바로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데 훌륭한 도구가 아닐까 싶어요. 기계적 특성상 조금의 제약이 있다지만 셔터를 누르기 위해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도 없고 어디든 부담없이 들고 나갈 수 있고 금전적인 부담감도 덜한 편이고. 일상을 담아내기에 토이카메라만큼 편하게 집어들 수 있는 카메라는 드문 것 같네요.
예, 비록 내일 당장 세계의 종말이 오건 로또 대박을 맞건간에 저는 소소한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내렵니다. 그리고 가방한켠에는 항상 토이카메라 한대가 들어 있겠지요. 여러분도 가방에 토이카메라 한대 대충 구겨 넣고 다니면서 순간순간의 일상을 담아보시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