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mm 표준렌즈가 너무 꽉 찬다는 느낌이 들 때, 50mm 렌즈가 보여주는 세상의 틀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가 바로 여러분에게 광각렌즈가 필요한 때입니다.
RF 카메라로 제대로 된 사진생활을 시작한 저는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망원렌즈의 필요성을 느끼기 보다는 광각렌즈에 대한 동경심만 늘어갔드랬죠. 표준 50mm 렌즈를 벗어난 저의 첫 번째 광각렌즈는 러시아에서 생산된 Jupiter-12 라는 35mm f2.8 렌즈였습니다. 50mm 렌즈로만 줄곧 사진을 찍던 저에게 35mm 렌즈가 보여주는 세상은 그야말로 광활함 그 자체였지요. 하지만 세상을 다 담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 광활함은 몇 달을 못 넘겼습니다. 인간의 눈은 이토록 간사하기만 합니다.
광각렌즈에 대한 목마름은 결국 21mm 렌즈를 두 손에 쥐게 합디다. 그리고 저는 광각렌즈가 만들어주는 사진에 푹 빠지게 됩니다. 좌측의 사진은 Color skopar 21mm f4 렌즈를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겨울이었고, 모든 잎을 떨꾼 나무 사이로 비둘기가 날아갔더랬죠.
오른쪽의 사진은 태풍이 몰아친 다음날의 종마목장입니다. Color skopar 21mm f4 렌즈로 촬영을 했습니다.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이 공간감을 살려주고 있지요. 위의 사진을 찍은 상황이건 오른쪽의 사진을 찍었던 상황이건 간에 만약 제가 가진 렌즈가 오로지 50mm 표준 단렌즈 뿐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표준렌즈가 보여줄 수 있는 절제되고 단정한 풍경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겠지만 넓은 공간감을 살릴 수는 없었겠지요.
이번 EastRain의 포토 다이어리에서는 매력 만점의 광각렌즈가 만들어주는 사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광각렌즈로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썰을 풀도록 하지요. 혹자는 조금 수긍이 가지 않거나 의아해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직접 사용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부분이니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넓고도 깊은 감성, 광각사진의 매력
에 모두 함께 빠져들어 볼까요?
2. 광각렌즈?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35mm 포맷의 카메라의 경우 필름의 대각선 길이 혹은 촬영센서(1:1 풀프레임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의 대각선 길이는 45mm 정도가 됩니다. 이 때 렌즈의 초점거리가 이 대각선의 길이와 비슷한 40mm에서 60mm 사이의 렌즈를 표준렌즈라고 하는데, 초점거리가 이보다 짧은 렌즈를 광각렌즈, 초점거리가 긴 것을 망원렌즈라고 합니다. 인터넷 서핑을 할 때 최단촬영거리를 최소초점거리라고 부르는 분들을 종종 만나곤 하는데 단어만 가지고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카메라 렌즈에서 칭하는 ‘초점거리’와 혼돈될 수 있으니 쓰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광각렌즈는 표준렌즈보다 더 넓은 범위를 찍을 수 있습니다. 초점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더 넓은 범위를 촬영할 수 있는데 사전적으로 35mm 렌즈부터 광각렌즈라 칭하긴 합니다만 최근에는 20mm대가 되어야 광각렌즈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10mm대의 렌즈들은 보통 초광각렌즈라 부르며(12mm, 15mm 등) 이 같은 초점거리의 렌즈 중에는 어안렌즈가 포함되기도 합니다.
광각렌즈는 표준렌즈에 비해 원근감을 과장시키기 때문에 장소를 넓게 보이게 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렌즈 가까이 있는 것은 실제의 물체보다 더 크게 찍히고, 떨어져 있는 것들은 실제보다 훨씬 멀리 있는 것처럼 작게 보이게 찍히기도 하지요.
광각렌즈는 동일한 조리개 값에서 표준렌즈나 망원렌즈에 비해 심도가 깊게 표현됩니다. 예를 들자면 15mm 렌즈의 경우 조리개를 f8로 조일 경우 0.5m에서부터 무한대 까지 모두 초점이 맞게 됩니다. 일반 50mm 렌즈의 경우에는 상상도 못할 깊은 심도죠.
3. 넓게 나온다고 능사는 아니다
광각렌즈의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넓게 나온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누구나 처음 광각렌즈를 접하게 되면 그 넓은 화면에 매료된 나머지 일단 최대한 많은 것들을 한 화면에 담아내려 합니다. 그런데 막상 결과물을 받아들면, 광활해도 너무 광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에 대해 말하길 불필요한 것들을 파인더 내에서 빼는 작업이라고 하는데 이건 뭐 사진 한 장 안에 너무 많은 게 들어 앉아있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최초에 찍은 사진 안에는 쓸데없는 사물이 너무 많이 찍혔습니다. 특히나 우측 하단의 구두는 사진을 제대로 망쳐놓고 있지요. 결국 트리밍을 하고나서야 조금 성에 차는 사진이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바닥에 대려놓고 노파인더로 찍다보니 벌어진 상황이긴 하지만 광각렌즈의 넓음이 무턱대고 장점으로만 발휘되지 않는 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대포에서 찍은 상단의 사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
다. 사진 아래로 너무 많은 모래사장이 나왔고 결국 아래를 잘라 트리밍 했습니다. 기껏 광각렌즈로 찍어 놓고 위아래 혹은 좌우를 잘라내면 보통 손해 보는 기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애초에 구도를 제대로 잡거나 욕심내지 말고 조금 더 좁은 화각의 렌즈로 촬영을 하는 게 나았을
지도 모릅니다.
과유불급, 이라고 하던가요.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사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제가 지금 광각렌즈로 찍은 사진을 트리밍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일단 광각렌즈를 들이대기 전에 조금만 생각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너무 많은 피사체가 한꺼번에 파인더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면 과감히 다른 화각의 렌즈로 바꿀 것을 권합니다. 넓게 나온다고 능사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광각렌즈를 포기할 수는 없죠. 이제 부터는 광각렌즈의 활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해요. 에, 그러니까 이제 부터가 진짜, 인거죠. 하하하.
4. 한정된 공간, 그리고 광각렌즈
우리가 사진을 찍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의 공간이 언제나 촬영자의 의지대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운신의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 폭이 얼마나 넓고 좁은가에 따라 어떤 렌즈를 사용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예컨대, 건물 안에서 촬영자가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쪽 벽에서 반대편 벽을 찍는다고 할 때 우리는 딱 그만큼의 거리만 운용할 수 있으니 아무리 뒤로 물러난다 하여도 렌즈의 화각에 따라 담아낼 수 있는 화면은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죠.
왼쪽의 사진은 회현 시민아파트를 찍은 사진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회현 시민 아파트의 공간은 상당히 미묘하고 복잡합니다. 그리고 이 화면을 담을 수 있는 공간도 제한적입니다. 만약 사진을 찍을 때, 15mm렌즈가 아닌 50mm 표준렌즈로 찍었다면 중앙의 화단밖에 담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바로 이런 순간, 이런 공간에서 광각렌즈는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우측의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의 3층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개인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멋진 공간이라 생각하는데, 이곳에서도 광각렌즈는 사용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채광이 좋은 무수히 많은 창과 넓은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을 담아내는데 광각렌즈처럼 효과적인 장비도 없을 테지요.
아래쪽의 예제 사진들도 마찬가지의 경우입니다. 모두 제한적인 공간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광각렌즈가 아니었다면 절대 찍지 못했을 사진들입니다. 용호동에서 찍은 사진의 경우, 폐양계장의 전경을 광각렌즈를 통해 적절히 담아내고 있으며, 아주 좁았던 홍대앞 카페에서 50mm 단렌즈를 사용했다면 햇빛을 즐기는 고양이 두마리를 담아내기엔 벅찼을 겁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50mm 렌즈로 찍었다면 바닥에 드러누워서 찍어도 저와 같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겠지요. 지하철 통로에서 찍은 사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모두 제한 된 공간에서 광각렌즈가 어떤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 다가서자, 피사체로
어떤 장비건 그 기계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특성은 사용자를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합니다. 렌즈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화각에 따라 사진의 스타일을 확연히 구분짓게 만듭니다.
광각렌즈를 한걸음 뒤에서 관조하게 만드는 렌즈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렌즈의 스펙이 보여주는 팩트만으로도 그러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지요. 대부분의 광각렌즈는 일반 망원렌즈나 표준렌즈에 비해 최단 촬영거리가 극단적일 만큼 짧습니다. 즉, 그만큼 더 다가가서 촬영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광각렌즈는 가까이 있는 사물은 더 가깝게, 멀리 있는 사물은 더 멀리 보이게 찍어줍니다. 즉 가까이 있는 사물에 포커스를 맞추면 더 극적인 원근감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넓게 나온다고 마냥 뒤로 물러서기만 한다면 광각렌즈를 사용하는 즐거움 중에 하나를 그냥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상단과 좌측의 고양이 사진을 보시면 가까이 다가감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두 사진 모두 Natura Black으로 촬영한 사진인데, 24mm 광각인 동시에 조리개의 밝기도 1.9로 꽤 밝은 편에 속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원근감을 강조하는 동시에 심도 표현을 통해 피사체를 좀 더 부각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단의 사진은 제한된 좁은 공간에서 피사체와 가까운 거리를 뒀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 같네요.
6. 물러설 거라면, 확실히 물러나자
제가 앞서 말하기론 가까이 다가서래 놓고 이게 뭔 말인가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광각렌즈는 사실 지극히 극단적인 장비입니다. 모 아니면 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지요. 바짝 다가서거나 확 뒤로 물러서거나. 중간에 위치하게 되는 순간 사진은 어중간해지기 십상입니다.
우측의 사진이 멀리 피사체를 둔 극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태안 갈음이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날 날씨가 참 미묘했습니다. 해가 비추다가 비도 내리고 말이죠. 모래사장에서는 해무가 피어오르고. 그런 겨울 바다에 부자가 산책을 나왔더라구요. 파도가 치는 바다로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깨알같이 작은 크기로 부자 가 서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모든 상황을 한 화면에 담는데 광각렌즈만한 장비가 없더란 말이죠. 표준렌즈, 혹은 망원 렌즈로 이 상황을 잡았다면 글쎄, 이런 느낌을 살릴 수 있었을까 싶어요.
아래의 갈매기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매기의 발자국과 갈매기가 모두 함께 나오길 바랐고 멀찌감치 갈매기를 두 고 찍음으로써 의도한 바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벤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남자의 사진, 그리고 선유도 벤치에 앉아 있는 인물을 찍은 사진 모두 멀찌감치 떨어져서 찍은 사진입니다. 다가가기 두려워서라기 보단(?) 오히려 거리를 뒀을 때 주변의 풍경과 함께 인물이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죠.
피사체와의 거리를 두는 것은 그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 피사체를 주변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방식으로 부각시키는 것이지요. 파인더에 무작정 많은 것을 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처음에는 이런 사진을 찍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연습을 통해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7. 인물사진은 망원렌즈로? 편견을 버려요!
일반적으로 인물사진을 찍을 때 망원렌즈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촬영을 하곤 합니다. 적당한 심도 표현 덕에 인물이 살아나기도 하고 압축된 공간 감덕에 인물이 부각되기 합니다. 그렇다고 인물사진을 반드시 망원렌즈로 촬영하 란 법은 없지요.
단언컨대 광각렌즈로 촬영한 인물사진은 망원렌즈가 만들어주는 사진보 다 더 나을지언정 못하지는 않습니다. 피사체와 확실히 교감하고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는 대상에게 조금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의미하고 한걸음 더 다가간 광각렌즈는 동적인 동시에 정적인 순간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나저나 아래로 쭉 이어지는 인물사진들은 대부분 세로 사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세로 사진만 즐겨 찍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일단 광각렌즈의 특성상 수평이 틀어졌을 때 중앙부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왜곡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풍경이나 건물사진이라면 그 왜곡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인물사진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광각렌즈를 장착하고 왼쪽이나 오른쪽에 인물을 치우치게 촬영하면 결과물에서 찌그러진 사람을 대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인물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죠.
세로사진의 경우 인물을 중앙 근처에 두더라도 사진이 심심해지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보통 가로사진의 경우 정중앙에 한명의 인물 을 넣고 프레임을 짜는 경우 사진이 식상해지거나 재미없어지기 쉽지요.
하지만 광각렌즈로, 세로 프레임을 짜고 인물을 중앙 근처에 두면 새로운 느낌의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가로로 넓은 화면에는 꽤나 익숙해져 있어요. 지금 이 리뷰를 보시면서 눈을 좌우로 돌려 보세요. 그런 다음에 위아래로 눈을 돌려 보세요. 우리의 눈은 위아래 보다 좌우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아래와 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숙여야 하지요. 그만큼 번거로운 일이고 위와 아래로 확장된 영상을 조우하는 것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위아래로 더 넓은 하늘과 땅이 나타나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면 비록 중앙 언저리에 피사체가 자리 잡고 있다 하여도 식상함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인물을 크게 부각시키고 싶은 경우에도 세로사진이 유리합니다. 특히 과장된 원근감을 나타내고 싶을 때는 세로사진이 더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극단적인 로우앵글이나 하이앵글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네요.
피사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진의 경우에도 광각렌즈는 힘을 발 휘합니다. 망원렌즈로 멀리서 움직이고 있는 피사체를 촬영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작업이 바로 광각렌즈로 역동적인 피사체를 담아내는 작업입니 다. 렌즈의 특성상 망원렌즈나 표준렌즈로 패닝을 시도하는 것 보다 광각 렌즈로 패닝을 시도하는 것이 성공적인 결과물을 가져다줄 확률이 높죠.
위의 사진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역동적인 피사체를 담아보세요. 넓은 풍경 속에 어우러진 피사체의 움직임을 재미있게 담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광각렌즈를 장착하고 피사체로 바짝 다가선 사진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저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넓은 풍경과 하나 된, 인물이 풍경이고 풍경이 곧 인물인 그런 사진을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아래의 사진 같은 그런 분위기를 광각렌즈로 담아내길 즐겨하지요. 하지만 그런 사진을 인물 사진속에 포함시키기도 애매하고 다른 주제와 함께 풀어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아서 일단 아래의 사진 한 장만 예제로 올려봅니다. 광각렌즈로 이야기가 있는 사진 찍기, 광각렌즈로 피사체를 담을 때 어떻게 덩어리 지을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 좀 더 깊이 다루도록 하지요.
8. 파노라마,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매력
잠깐 쉬어가는 의미에서(?) 조금 독특한 포맷의 사진을 이야기해볼 까 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바로 파노라마 포맷의 사진입니다. 개인적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관계로 한 종류의 카메라 로 찍은 샘플 사진만 있습니다. 좌측에 보이는 HORIZON이라는 파노라마 카메라인데요, 이 카메라는 일전에 리뷰로 소개 시켜드렸던 MINOLTA Freedom Vista와는 달리 실제로 필름면적을 길게 쓰는 파노라마 카메라입니다. 일반 135 카메라의 촬영면적은 24mm X 36mm 인데 반해 이 카메라는 24mm X 58mm입니다. 가로의 촬영길이가 활씬 길죠.
파노라마 카메라의 장점을 굳이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결과물을 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가로가 길쭉한 파노라마 사진 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사진의 형태를 과감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확실히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보다 넓은 화면 속에 보 다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가 있지요. 사실 이런 글을 그다지 필요가 없는 잡설에 불과합니다. 그저 작례사진들만 주욱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9. 뺄 수 없다면, 뭉쳐요
우리는 흔히 사진을 찍는 행위를 파인더 안에서 필요 없는 것을 하나씩 빼는 작업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 명제를 광각렌즈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분명 어려움이 있습니다. 파인더 안에 들어오는 수많은 피사체를 하나하나 가려가며 빼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이걸 뺐다 싶으면 저게 들어오고 저걸 뺐다 싶으면 다시 또 이게 들어오고 말이죠. 그렇다고 광각렌즈 쓰는 걸 포기할 수도 없으니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광각렌즈 사용을 포기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곤 합니다.
하지만 시선을 좀 더 넓게 가지고 새로운 눈으로 대상을 바라본다면 광각렌즈로 사진을 찍는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미시적인 시선으로 작은 것 하나 하나에 신경 쓰며 프레이밍 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으로 사물 여러 개를 하나의 덩어리 로 뭉쳐서 바라보자는 것이지요.
표준렌즈를 쓸 때 견지하고 있던 시선을 광각렌즈에서도 똑같이 고집해서는 결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없거든요.
상단의 회현시민아파트에서 찍은 사진을 한번 볼까요. 초광각렌즈라 말할 수 있는 15mm 렌즈에 감도 400의 필름을 물리고 조리개를 11정도로 조이고 촬영했습니다. 좌측 최상단의 사진의 경우에 일반적인 시선으로 파인더 안에서 사물을 넣고 빼려 했다면 나뭇잎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진이 산만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사진을 볼까요. 인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그리고 우측 전체를 감싸고 있는 녹색의 잎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물로 향하고 있는 계단을 또 하나의 덩어리로, 마지막으로 좌측 하단의 나뭇잎을 하나의 덩어리로 구분한다면 어떨까요? 넓은 공간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색 하거나 산만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우측 상단의 사진은 그에 비하면 조금 산만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찬가지 방법으로 덩어리 지을 수 있습니다. 절영해안산책로에서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측상단에서 우측하단으로 대각선을 그어보면 오른쪽 은 하늘과 바다, 왼쪽은 인물과 골목길로 구획을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방법으로 파인더 안에 들어오는 상황을 구분 짓고 구역화하는 것은 광각렌즈뿐만 아니라 일반 표준렌즈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다만 광각렌즈에서 더 힘을 발휘하는 방법이랄까요.
노출차를 이용한 덩어리 짓기도 한 방법입니다. 광각렌즈의 경우 한 화면 에 넣을 수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광활함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서 한 화면 안에 들어오는 모든 상황을 적정노출로 찍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다면 과감히 특정 부분만 적정노출로 찍히도록 조절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 상황을 조금 응용한다면 위와 오른쪽의 사진과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갈음이에서 찍은 사진은 관용도가 좁은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했는데 해가 비치고 있는 바다 쪽에 노출을 맞추어 전체면적의 1/2은 어둡게 표현 되도록 촬영했고 자칫 밋밋할 뻔했던 사진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상단의 한강에서 찍은 사진은 노출차를 이용해 교각을 액자처럼 보이게 하여 중앙부를 더욱 강조할 수 있었고 말이죠. 우측의 사진은 교각과 그림자로 화면을 분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때요? 참 쉽죠? 라고 말씀드리긴 조금 곤란하지만 그래도 아주 어려운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만 연습해도 금방 익숙해질 수 있거든요.
10. 이야기를 담고 싶다면
드디어 이번 포토 다이어리의 마지막 주제군요. 사실 지금 이 단락의 이야기를 너무 하고 싶은 나머지 앞의 이야기들을 주절거렸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제게 있어서 앞서 이야기한 나름의 생각과 기술은 지금 말하고 자 하는 사진찍기를 위한 구성요소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무슨 뜻인고 하니, 제게 있어 광각렌즈란 들이대는 장비 도, 왜곡을 즐기는 장비도 아니란 말이지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의 사물에 오롯이 집중 하고 싶다면, 그 사물로 사진이 꽉 차길 바라고 그러한 방법으로 사진찍는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광각렌즈 는 불필요한 장비입니다. 적어도 제게 있어서 광각렌즈 는 그런 장비입니다.
광각렌즈는 이 세계의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비라고 생각해요.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혼자서 잘날 수도 없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렌즈랄까요. 광각렌즈 특유의 깊은 심도와 넓은 화각이 저의 이런 믿음을 뒷받침해 줍니다.
드넓은 파인더 안에 특정한 피사체만 홀로 꽉 채워서 세워놓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광각렌즈를 제대로 사용한다는 건 넓은 화면 속에 들어오는 무수 히 많은 피사체들을 조화롭게 재구성하고, 그것들을 한데 모아 산만함에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아닐까요?
사진 속에서 어떤 인물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가 오로지 그 사람의 출중한 외모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싶어요.
저는, 그래서 광각렌즈를 좋아합니다. 어떤 순간을, 어떤 피사체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것은 마치 점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그러나 한데 뭉쳐서 멀리서 바라봤을 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점묘화가 가지는 매력과도 비슷합니다. 동시에 수많은 톱니바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단 하나의 톱니바퀴만 빠져나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시계와도 비슷합니다.
넓은 화면에 여러 피사체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구성한다는 것은 사진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도 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표준화각의 렌즈에서도 그와 같은 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광각렌즈가 가지는 특유의 공간감은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건물, 교각 등의 배경이 인물과 함께하는 사진을 보면 그 의미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한 화면에 제각각 뛰어놀고 있는 피사체를 조화롭게 담아내는 순간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이 그 상황을 묘사하는 것을 뛰어넘어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획득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이 좀 더 그 사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들고 좀 더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깊은 심도의, 넓은 화각의 광각렌즈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인 것이지요.
이처럼 어떤 찰나의 아름다움과 순간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내고자 한다면 바로 그 짧은 시간을 잡아낼 수 있는 신속성이 필요합니다. 파인더를 보고 바로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신속성 말이지요.
조리개를 바짝 조인 광각렌즈만큼 스냅에 적합한 장비가 또 있을까요. 깊은 심도덕에 초점 맞추는데 신경 쓸 필요 가 없으니 파인더를 보고 구도를 잡을 뒤 셔터를 누르기 만하면 됩니다. 적당한 광각렌즈를 탑재한 똑딱이 카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똑딱이 카메라를 Point and Shot 카메라, PS카메라라 부르니 말이죠.
더불어 토이 카메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맑은 날 야외에서, 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토이카메라는 감히 스냅머신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스냅에 강한 카메라입니다. 대부분의 토이카메라 1미터~무한대까지 초점이 맞는 포커스 프리 방식으로 사진을 찍게 되어있고 대부분 35미리 이상의 광각렌즈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번 포토 다이어리의 작례에 사용된 사진 중에 토이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1/4 정도는 족히 되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네요.
어찌되었건 광각렌즈가 스냅에 적합하다는 건 두말해봐야 입만 아픈 사실입니다.
이제 길었던 이번 포토 다이어리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더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고, 더 보여드릴 사진도 없고 말이죠. 하하. (사실 수십 장의 사진이 사진 선정과정에서 탈락되었습니다....) 혹, 버퍼링의 압박이 짜증나셨거나, 너무 긴 내용에 지루하진 않으셨는지 걱정이네요.
사실 이번 포토 다이어리를 준비하면서 앞서 다뤘던 주제인 얕은 심도의 사진과 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뭔가 상충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 쓰고 보니 기우였던 것 같아요. 흔히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죠. 사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어요. 얕은 심도건 깊은 심도건 간에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좋은 사진’이라 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거든요. 다만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요.
저의 주절거림과 사진을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자, 이제 제 블로그를 들러주시는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멋진 광각사진 트랙백을 두 손 모아 기다리겠습니다. :)
취미로 사진을 찍으시는 많은 분들이 소위 말하는 아웃포커싱(이 단어는 잘못된 영어 표기의 대표적인 예죠. 본문의 다음 부터는 뒷흐림 등의 말로 표현됩니다.)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라고 예외는 아닌데, 2004년에 찍었던 왼쪽의 사진이 저를 사진이라는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 들였지요. 무겁고 폼도 나지 않는 Fed 5C라는 러시아 카메라로 찍었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것 같아요. 10월의 날씨도 참 좋았고 말이죠. 그 카메라에 달려있던 싸고 성능 좋은 Industar 렌즈도 한 몫했었고요.
저 사진을 받아들고 ‘아, 멋지게 뒤가 흐려지는 사진이야말로 취미사진의 로망이구나!’라고 생각했으니 뭐 말 다했지요.
뒤가 멋진게 흐려진 사진을 찍고는 마구 두근거렸던 그 느낌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그런 사진을 직접 찍지 않더라도 누군가 자신의 인물사진의 배경을 멋지게 날려서 찍어줬을 때의 그 놀라움을, 기억하십니까?
이제 그 아련한 뒷흐림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깊은 정도가 되겠네요. 길이로 치자면 깊다는 표현은 길다는 것으로, 얕다는 표현은 짧다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초점이 맞는 길이, 즉 범위가 얼마나 되느냐를 말하는 것인데요. 심도가 얕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은 구간이 짧아서 그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심도가 깊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은 범위가 길어 전체적으로 사진이 쨍하게 나온 경우를 말하지요.
심도를 표현하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는 크게 세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우선 사진이 찍히는 필름 혹은 센서의 촬상면적입니다. 면적이 넓으면 넓을 수록 심도표현의 폭이 넓습니다. 두번째는 렌즈입니다. 렌즈의 밝기가 밝고 표준이상의 망원계열 렌즈일수록 더욱 얕은 심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초점이 맞은 피사체와의 거리입니다. 같은 화각의 같은 밝기의 렌즈로 같은 피사체를 찍더라도 얼마나 가까이에서 찍는가에 따라 심도가 다르게 표현됩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우측과 하단의 사진은 모두 120 필름을 사용하는 중형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필름면적이 넓은데다가 꽤나 가까이에서 촬영했죠. 그덕에 초점이 맞은 범위가 상당히 좁아졌고 렌즈의 조리개 값을 5.6 정도로 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얕은 심도의 결과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촬상면적이 좁다해도 아주 근거리에서만 찍는다면 뒤가 흐려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휴대폰 카메라,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에 아무리 CCD의 크기가 작다해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을 찍게 되면 얕은 심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듯이 말이죠.
촬상면적과 관련해 좀 더 확실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앞서 촬상면적이 넓을 수록 심도가 더 얕게 표현이 된다고 했는데 말이죠, 좌측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을 한번 보겠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춘 사진입니다. 차이점이라 한다면 사용한 카메라의 포맷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좌측의 정방형 사진은 120 중형필름으로 촬영했고 아래의 사진은 35mm 일반 필름으로 촬영했습니다. 35mm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좌로 더 많은 부분이 나와 비교하기에 조금 애매해 같은 비율로 잘라봤습니다.
35mm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 값이 2.0 정도로 꽤 밝게 개방이 된 상태였고 120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카메라의 조리개 값이 5.6 이상으로 조여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점이 맞은 주황색 장난감의 전후 뒷흐림을 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0 필름의 경우에는 전면에 놓인 빨간색 장난감의 형체가 아주 뿌옇게 표현된 반면에 35mm 필름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그보다 선명하게 표현이 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아주 원거리에 있는 건물의 흐려진 상태만 봐도 두 사진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진의 심도에 대한 광학적인 설명은 아주 길고 아주 복잡합니다. 저도 똑 부러지게 수식을 보여주며 심도에 대해 설명해드리기 힘들정도입니다. 그저 대략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밝은 렌즈, 망원 렌즈,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 넓은 촬상면적의 경우에 더 얕은 심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누구나 멋진 인물사진을 찍고 싶어해요. 누구나 자신이 아끼고 사랑해마지 않는 주변사람들을 파인더에 담아 한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예, 바로 그때가 심도가 얕은 인물사진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죠.
왼쪽의 사진은 3월쯤에 찍은 사진입니다. 3월인데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날로 기억해요. 코가 듬직하게 생긴 저 녀석은 담배를 한대 입에 물고 한껏 폼을 잡았지요. 같이 일하던 동생인데 가끔 저렇게 분위기를 잡아서 멋진 모델이 되어주곤 했습니다.
사진을 찍었던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일단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F3.5)했고, 빛이 모자란 상황이라( ISO 160 필름사용)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덕에 배경은 꽤 많이 흐려졌고 날리던 눈발은 붓질을 한 것처럼 궤적으로 그려졌네요. 참고로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라 135필름을 쓰는 일반 소형카메라에 비해 심도가 더 얕게 표현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인물에 노출을 맞추느라 배경의 색이 많이 날아갔지요. 그덕에 중앙에 위치한 인물이 더욱 부각되었네요. 마치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남자인양 멋지게 폼을 잡은 게 무색하지 않게 사진이 나와준 겁니다. 그래요, 적어도 사진속의 저 친구는 이순간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거죠.
이맛에 얕은 심도로 인물사진을 찍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단의 두 사진은 모두 꽤 밝은 렌즈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F1.2 근방으로 조리개를 맞추고 촬영을 했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렌즈를 개방하면 할 수록 피사체가 소프트하게 표현됩니다.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이 흐릿하게 표현되는 건 당연하고 초점이 맞은 부분 조차도 조리개를 조인 사진보다 훨씬 소프트하게 표현이 되죠. 혹자는 렌즈의 성능을 살려 촬영하기 위해서는 한 단이라도 조리개를 조이라고 말하지만 말이죠. 취향의 차이긴 합니다만, 일물사진을 찍을 때(특히 여성?)는 소프트하게 표현되는 것도 나름 예쁨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에 저는 무조건 최대개방입니다.(과연?)
사실 구도의 정석은 정중앙에 피사체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모든 상황에서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심도를 얕게 표현한 사진은 중앙에 피사체를 두었을 때 오히려 사진이 사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우측상단의 백사실계곡에서 촬영한 저 사진도 그런 예중에 하나죠. 비록 피사체가 화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정중앙에 배치되었지만 얕은 심도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인물이 더욱 부각되고 있거든요.
물론 무턱대고 심도를 얕게만 한다고 좋은 인물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만, 얕은 심도에서 자신의 내공을 상회하는 그럴싸한 사진이 나와줄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반스탑 혹은 한스탑의 밝기를 더 취하기 위해 두배 가량의 돈을 투자해 렌즈를 기변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형편이 된다면 그다지 말릴 일은 아닙니다만 무리해서까지 밝은 렌즈를 구비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거든요. 가장 저렴하게 한스탑의 셔터스피드를 확보하는 방법은 필름 감도를 높이는 것이고 돈들이지 않고 조금 더 얕은 심도를 확보하는 방법은 한발짝 더 피사체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원래 빛망울 이야기는 따로 할 생었는데 딱히 예제 사진으로 쓸만한 사진이 많지가 않아서 이번 기회에 같이 이야기할까해요.
제가 디지털 카메라는 그다지 잘 모릅니다만, 똑딱이 디지털카메라의 대부분이 접사를 제외하고는 뒷흐림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요.(최근에 시그마에서 출시된 DP-1, DP-2는 예외로 해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찌나 뒷흐림을 갈망하였는지 일부 똑딱이 카메라는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특정부분을 흐릿하게 만들어주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포토샵의 블러효과와 다를 게 없지요. 뜬금없이 블러타령이냐 하시면 바로 빛망울때문이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상단의 사진을 한번 볼까요. 배경을 자세히 보시면 별모양의 빛망울이 맺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빛망울의 맺힘이 단순히 배경을 흐리게 만들어주는 블러 효과와의 차이점이죠. 렌즈 조리개의 모양이 빛망울의 맺힘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데, 상단의 저 사진을 찍은 렌즈는 특정구간에서만 별모양으로 조리개가 조여집니다. 참고삼아 올린 부분 확대 사진을 보면 별모양의 빛망울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우측과 하단의 사진은 조리개가 원형으로 조여지는 렌즈로 촬영을 했어요. 그덕에 동그랗고 몽글몽글한 빛망울이 맺혔지요. 이처럼 사진의 뒷흐림에 빛망울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우선 예제 사진을 보셔서 알겠지만 나뭇잎이 우거진 곳을 배경으로 하고 근거리에 있는 사물을 촬영하면 빛망울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에 전구등의 반짝이는 사물이 있을 때에도 빛망울이 맺히구요. 다만 초점을 맞춘 피사체가 너무 멀리 있을 경우에는 뒷흐림이 나타나지도, 빛망울이 맺히지도 않습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심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번에는 조금 독특한 빛망울들을 보시겠습니다. 음, 사실 이 사진을 찍은 렌즈로 리뷰를 하나 작성해야 하는데 워낙 찍어놓은 사진이 없다보니 이런 기획 포스팅의 작은 공간만 차지하게 되었네요.
이 사진들은 LensBaby라는 특이한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주밍(zooming)+시프트(shift) 효과가 동시에 가능한 독특한 렌즈죠. 만듦새는 상당히 변태스럽고(?) 조금 조잡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처럼 개성적인 뒷흐림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저처럼 신기한 물건 보면 못참는 사람들에게 must have 아이템이 되곤 합니다.
예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LensBaby는 빛망울과 뒷흐림을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합니다. 초점을 맞춘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사진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전체적인 공간감을 일그러뜨리기도 합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3장의 사진은 과장된 빛망울 표현하고 있지요. 다른 꼭지에서 보여드릴 LensBaby의 사진을 보시면 사람들이 사진의 다양한 심도표현에 빠져드는 이유를 짐작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흔들린 사진,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 열거한 세가지는 사진을 찍을 때 기본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들 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니랍니다. 마치 로버트카파의 흔들린 사진이 현장감을 더해주기도 하는 것 처럼 말이죠.
초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반드시 특정 피사체에 정확하게 초점이 맞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빛망울이나 뒷흐림 그자체로 아름다운 경우에는 고의적으로 초점이 나간 사진을 찍는다해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자주 찍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가끔 이런 사진을 찍을 때가 있지요. 사실 제가 자주 쓰는 기종이 RF카메라인지라 파인더를 통해 심도를 미리 가늠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춰야죠. 하지만 SLR카메라의 경우에는 파인더를 통해 찍는 사진의 심도가 어떻게 표현되는 지 알 수 있으니 일부러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미리 계산하고 가늠하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면 RF카메라 보다는 SLR카메라를 추천합니다. 우연에 기대어 초점이 나가게 대충 사진을 찍어도 좋겠지만, 그리고 사진이 때론 운에 좌우되기도 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일 뿐이지요. 자신이 찍는 사진을 그런 우연성에 모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평소에 이런 배경에서는 뒷배경이 아주 아름답게 흐려지더라, 싶으시면 한번 과감히 모두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찍어보세요. 그리고 감을 익혀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해보세요. 얕은 심도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입니다.
심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근거리에 있는 피사체에 정확히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심도를 표현한다는 건 공간감을 표현하는 또다른 방법이잖아요. 즉 멀리 있는 건 흐리게 만들어서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를 더욱 부각시킨다는 건데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그럴싸한 공간감을 만들어줄 수 있거든요.
우리는 종종 얕은 심도의 사진을 찍을 때 무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피사체를 무조건 앞에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도 그런 구도는 어쩐지 재미가 없을 것 같지 않나요? 공간감이란 결국 부각시키고 싶은 피사체의 전후로 흐려짐이 발생할 때 좀 더 극대화 되니까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실제하는 세상의 이치와 결코 다르지 않아요. 파인더에 매몰되거나 찍고 싶어하는 피사체에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치가 그대로 사진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왼쪽의 사진을 볼까요. 초점을 맞춘 고양이는 뒤에 있지만 일부러 난간을 앞에 두게 구도를 잡아 흐리게 표현되게 했고 그덕에 고양이와의 거리감을 좀더 부각시킬 수 있었습니다.
좌측의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리창에 글자들이 많이 쓰여 있지만 심도표현으로 인해 흐려지면서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에 시선이 집중이 되고 있지요. 상단의 사진의 경우에는 장난감 버스의 전면부에 놓인 화단이 흐릿하게 표현이 되고 버스의 뒤도 흐리게 표현이 되어 피사체를 좀 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좌측하단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총 세잔의 물잔이 놓여있지만 가운데 물잔에 초점을 맞춘 게 포인트지요. 우측하단의 사진은 반영 사진인데 카메라로 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른 잎줄기들은 보케가 되어 흐려졌고 원경에 있는 나무가 선명하게 표현이 되어 독특한 원근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얕은 심도의 사진이 왜 시선을 끄는지에 이야기하기 전에 앞서 이야기 하다 말았던 Lenababy를 좀 더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아요. Lenababy는 빛망울을 이야기 할 때 잠깐 언급이 되었는데 이 렌즈는 매력적인 보케 뿐 아니라 독특한 공간감을 부여해주는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좌측과 하단의 사진을 한번 볼까요. 일반적인 렌즈라면 전기송전탑이나 전주처럼 멀리 있는 피사체를 저정도 크기로 프레이밍하고 초점을 맞추면 심도표현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든 곳에 초점이 맞은 사진이 나오죠. 하지만 Lensbaby는 다릅니다. 밋밋한 풍경사진에 심도를 표현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같은 선명함으로 표현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의 일부는 선명하게 ,일부는 보케가 되어 나타나게 됐죠.
이처럼 LensBaby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감을 일그러뜨리고 새로운 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심도표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사진은 2차원적인 예술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평면적인 표현만 가능해요. 그 평면적인 결과물에 입체성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 바로 심도이죠.
회화적인 표현
즉 밋밋해보이기 쉬운 2차원적 공간속에 입체적인 3차원적 공간을 표현하게 되고 이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특정 대상을 바라볼 때 켤코 카메라의 렌즈가 바라보는 것 처럼 얕은심도로 표현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의 눈은 아주 깊은 심도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그래야만 실제하는 사물들의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쉽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지극히 당연한 이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생경한 이미지, 낯선 이미지가 만들어질 때 기존의 이미지와 ‘꽝’ 하고 부딛치는 충돌지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실제하는 사물을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의 두 눈으로 직접보고 있는 실제하는 사물을 사진에 담는 작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물은 우리가 실제로 본 것과 전혀 다르게 표현이 된다는 거죠.
만약에 사진이라는 작업이 기본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면 심도를 표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그다지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어떤 피사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요. 실존하는 사물을 찍었는데 렌즈를 통해 맺힌 상은 그 실존하는 피사체와 다르게 표현이 되니 그 순간 ‘꽈광!’하고 충돌을 일으키는 겁니다.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와 카메라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즐겁게 충돌하며 반짝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얕은 심도의 사진은 사진보다 먼저 예술적 장르로 자리잡았던 회화의 자리까지도 넘보곤 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찍는 이의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는데다가 얕게 심도가 표현된 사진의 배경은 흡사 붓질을 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좌측의 사진과 위의 사진들처럼 특정하게 패턴을 이루고 있거나 모여 있는 사물이 배경으로 있는 경우에는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뒷흐림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얕은 심도의 사진에 더 빠져드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여튼, 이처럼 회화적인 느낌의 사진은 감성의 현을 통통 떨리게 만들고 그 현의 떨림은 작은 울림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말이죠, 사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건, 꾸준히 찍고 있는 사람이건 구분없이 얕은 심도의 사진에 빠져들 수 밖에 없지않나 싶어요.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한 사람을 앞에 두고 “너 아웃포커싱 좋아하는 거 보니 사진 초보구나!” 라고 소리치는 분을 가끔 보곤해요. 전 속으로 생각하죠. ‘이그. 올챙잇적 생각 못하는 사람 같으니라고.’ 에, 그런데 사실 저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 생각하고 보면 참 부끄럽지요. 여튼, 심도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로 그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는 건 위험해요. 얕은 심도의 사진을 좋아한다고 그 사람의 사진도 얄팍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 만큼 큰 오산도 없을 거예요. 심도는 표현의 한 방법일 뿐이고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얕은 심도를 좋아할 수 있고 말이죠.
이제 슬슬 이번 일기를 마칠 때가 온 것 같아요. 어떻게,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도움이 되셨다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 이번에도 여러분의 트랙백을 기다리겠습니다. 멋지게 뒤가 흐려진 사진을 보고 싶어요. 반짝거리면서 ‘꽈광’하고 충돌하는 그런 느낌의 사진을 말이죠.
참고로 다음 번 EastRain의 포토 다이어리 주제는 심도 깊은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