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가장 무보정에 가까운 결과물은 RAW파일일텐데 이건 후보정을 위한 파일 아니던가요?
JPG파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용량도 엄청크지요.
로우파일로 찍어서는 어떤 부분도 건드리지 않고 JPG파일로 변환하시는 분, 있으세요?
뭐,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참 비효율적이지요.
2.
물론 대부분의(저조차) 일반 유저들은 RAW파일이 아닌 JPG파일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다면 JPG파일로 찍은 사진의 경우는 어떤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지요.
흔히들 어떤 디지털 카메라의 샘플 사진이라며 '무보정 리사이즈 only'를 강조하곤 합니다.
이는 원래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사진의 기본적인 색감이나 계조, 노이즈 등등을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지요.
그런데 저는, '무보정 리사이즈 only'라는 말 속에서 기본적으로 이 사진은 후보정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카메라가 만들어주는 이미지는 이러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유저는 이를 참고하여 각자 입맛에 맞는 사진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라, 이런 뜻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무보정 리사이즈 only'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보정 사진 자체가 마음에 드는 카메라를 찾아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카메라를 선택하는 수많은 고민거리중에 하나밖에 되질 않습니다.
기능, 디자인, 인터페이스, 확장성, 기타 등등 수많은 선택사항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거죠.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색감이나 콘트라스트 등은 후보정으로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다이내믹레인지라던가 하는 부분은 카메라별로 다르므로 고민할 부분이긴 합니다.
(그런데, 다이내믹레인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건 결국 후보정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대한 고민과 맞물리게 되지요.)
3.
그렇다면 예~전 필름카메라만 있던 시절엔 어땠을까요.
일단 흑백필름을 주로 쓰며 본인이 직접 현상, 인화를 하는 했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때라고 후보정이 없었겠습니까.
닷징, 버닝, 크롭, 트리밍 등등 여러 후보정을 직접 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주로 컬러네거티브필름을 사용했던)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사진을 찍은 그 이후엔 무조건 현상소의 몫이었습니다.
같은 필름을 맡겨도 현상소마다 인화되어 나오는 결과물이 다 달랐죠.
현상소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그 말은 현상소 마다 각자의 후보정기술이 달랐다는 말로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겁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디지털 카메라가 급속히 보급되고 난 후, '후보정'으로 갑론을박하게 되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왜냐면 누구나 카메라를 쓰게 되고, 누구나 그 즉시 결과물을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예전에는 소수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후보정'이 일반인의 몫으로 떠넘겨진 것이죠.
4.
간혹 답답한 경우를 종종 보곤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비교적 '후보정'에 대한 관용도가 넓은 편이나
이상하게도 필름 사진에서 '후보정'이 터부시되는 경우를 자주 맞닥트리게 된단말이죠.
물론 필름의 경우 필름 종류별로 각각의 특징이 있고 표현되는 색감이 다릅니다.
물론, 1차적으로 필름을 선택할 때 그 필름의 특징을 이미 알고 선택하기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비교했을 때 색감 등에 대한 후보정의 폭은 적은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보정을 전혀 하지 않아야만 '필름사진을 찍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우기는 건 좀 답답합니다.
사진으로 예를 들어볼께요.
(각각의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엑시무스로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이 보정, 오른쪽이 스캔원본 입니다.
일단 둘다 포토웍스에서 리사이즈, 샤픈을 주었고 왼쪽 사진에는 오토콘트라스트 옵션을 줬습니다.
그리고 라이트룸에서 약간의 색을 조절했지요.
말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이쯤에서 대충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후보정은 최종적으로 이미지를 가다듬는 작업입니다.
물론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의 작업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후보정'도 사진을 찍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
결국 최종 결과물은 찍은 사람의 의도, 주제 등이 명확히 드러나야 하는데 후보정이 그 마지막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죠.
주절주절 길게 썼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후보정은 이런겁니다.
'후보정은 개인 각자의 몫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진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다'라고 말이죠.
물론 사람들을 기만하는 어처구니 없는 합성(예컨데 모협회의 사진대전에 입상한 개념 없는 작품들)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풉.